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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23) '세기말의 노래'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발행일 : 2022.04.07 / 여론/독자 A3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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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에 개봉한 '아가씨'(박찬욱 감독)는 내게 무척 인상적인 영화였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영화에서 배경음악으로 이따금씩 흐르는 '세기말의 노래'(박영호 작사, 김용환 작곡, 이경설 노래)에 귀가 번쩍 뜨였기 때문이다. 영화 개봉 전까지 이 노래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0년대 초반에 박사논문을 쓰면서 열심히 들여다본 것이라 내게는 의미 있는 노래였다.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인 1932년에 발매된 노래가 이 시대에 다시 살아난 셈이다. 특히 이 노래가 중요한 것은 1933년에 시작한 음반 검열 이전에 발매되어서인지 시대 인식이 잘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총 3절로 이루어진 '세기말의 노래' 1절은 "거미줄로 한 허리를 얽고 거문고에 오르니 일만 설움 푸른 궁창 아래 궂은비만 나려라. 시들퍼라 거문고야, 내 사랑 거문고! 까다로운 이 거리가 언제나 밝아지려 하는가"이다. 1절의 '거문고'뿐 아니라 2절과 3절에 나오는 '만경창파'와 '청산벽계'는 모두 우리나라를 상징한다. 하지만 거리는 까다롭고 바다는 뒤숭숭하고 마을은 어둡다. 부정적인 현실을 그렇게 드러냈다. "청산벽계 저문 날을 찾아 목탁을 울리면서 돌아가신 어버이들 앞에 무릎 꿇고 비노니"로 시작하는 마지막 3절에서는 조상을 뜻하는 어버이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승려의 모습이 그려진다. 비관적 세상의 슬픈 장면이다.

    2000년으로 넘어가던 때에도 세기말 분위기가 만연했다. 세기말 감성을 담은 노래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편의 응축된 짧은 비극으로 구성된 뮤직비디오로 대중의 큰 호응을 얻은 조성모의 노래들에는 세기말의 분위기가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1998년에 발표한 'To Heaven'을 시작으로 '불멸의 사랑' '슬픈 영혼식' '아시나요' '가시나무'로 이어지는 일련의 노래들에는 세기말 감성이 물씬 풍긴다. 사랑과 이별, 죽음의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내용의 뮤직비디오는 당시 많은 이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지금 내가 세기말적 감성을 느끼는 것은 단순한 감상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전 세계가 2년 넘게 감염병으로 고통받는 가운데 지구 저편에서 들려온 전쟁 소식은 아프도록 슬펐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비참한 삶을 견뎌내고 있다. 그런데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무력해서 부끄러워진다. 일제강점기에 이경설이 '세기말의 노래'를 부를 때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신현림 시인은 시집 '세기말 블루스'에서 "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고 했다. 세기말의 분위기가 만연한 가운데서도 봄꽃은 피어났다. 그렇게 봄꽃이 희망처럼 꽃망울을 틔웠다.
    기고자 :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대중음악사학자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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