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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톡] 용접 일 하던 공장 노동자가 기자가 되었습니다

    천현우 Alookso 에디터

    발행일 : 2022.04.07 / 여론/독자 A3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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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데없는 입사 제안을 받았다. 미디어 스타트업 회사다. 이제껏 해왔던 용접 일과는 하등 상관없는 분야. 고민 끝에 승낙했지만 아직도 얼떨떨하다. 블루칼라에서 화이트칼라, 공장 노동자에서 언론 노동자로. 우연이 겹치고 겹쳐 내 삶의 형태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오늘로 서울살이 한 달 차다. 아직은 모두 낯설다. 특히 자유가 익숙하지 않다. 이젠 꼭두새벽부터 통근 버스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작업복과 안전화를 신지 않아도, 식판에다 배식을 받지 않아도 된다. 아무 복장이나 입고 직장에 가서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며 일할 수 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바뀌었다. 모두 4년제 대학 이상을 나온 2030이다. 대화하다 보면 사는 세계가 많이 달랐음을 느낀다. 그간 내가 공장에서 함께 일했던 이는 주로 4050 중년이었다. 어느 회사를 가나 막내였던 나는 '행님들'의 거친 말에 혼이 빠지기 일쑤였다. 그 투박한 언어 세계에 너무 오래 있었던 걸까. 내 표현이 속뜻과 전혀 다르게 전달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번은 "셀프 식당에서 물 가져다 달라고 했다가 욕먹었다"고 했더니, 손님한테 욕지기하는 알바가 어디 있냐며 허풍쟁이 취급을 당했다. 내가 있던 경남의 공장에서 '욕먹었다'는 말은 '핀잔 들었다' 정도의 뜻이었다. 분명 같은 계절인데 동료들은 다 추워하고 나만 덥다고 난리 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가장 달라진 건 역시 일 그 자체. 늘 정시에 정량의 물건을 만들어내야 했던 공장 노동과 달리 모든 요소가 불확실했다. 원하는 대로 착착 풀리질 않으니 구시렁구시렁 혼잣말이 많아졌다. 그 모습에 동료가 씩 웃으며 물었다. "기자 욕할 때가 좋았죠?" 그 말대로였다. 비난할 땐 편했다. 기자들을 싸잡아 양치기 소년 취급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으니까. 막상 일해보니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기자는 앉아서 글 쓰는 직종이 아니라 바삐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었다. 문제는 타인이 결코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 인터뷰 대상의 전화번호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어찌어찌 알아내도 전화나 문자를 받아주는 건 또 별개요, 설령 연락이 닿아도 만나서 인터뷰까지 받는 건 아예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뿐인가. 인터뷰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리란 보장은 전혀 없다. 어릴 적 한밤에 놀이터 모래 위로 흘린 동전을 더듬어 찾을 때의 기분이 이랬을까.

    정식으로 미디어 공부를 하지 않은 탓에 불안할 때도 많다. 기자로서 갖춰야 할 태도와 상식을 배우지 않았을뿐더러 몸에 배지 않았다. 기사를 작성하건 사람을 대면하건 마찬가지. 지금 하는 행동이 저널리즘에 걸맞은 행동인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부족한 상식 또한 발목을 잡는다. 지식 저변이 얕아 다룰 수 있는 주제가 너무 좁다. '먹물' 아닌 출신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내 부족한 점이 계속 눈에 띄고 밟히지만, 의욕 넘치는 신입이 된 현재가 썩 나쁘진 않다.

    머릿속엔 온갖 취재거리가 떠오르고 손은 기사를 쓰고 싶어 온종일 근질근질하다. 앞으로 내가 어떤 종류의 필자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때론 위축되기도 한다. 용접은 성과 지표가 2차원이다. 빨리, 잘 때우면 된다. 반면 기자 일은 성과 지표가 3차원이다. 암만 공들인 기사도 사람들이 거의 안 보면 실패다. 많은 사람이 본들 분란만 일으킨다면 이 역시 실패다. 고려할 점이 훨씬 많아졌다. 다만 본질은 같다. 용접도 글쓰기도 빈 곳부터 메꾸어 나가는 것, 그리고 그 메꾸어 낸 결과물이 사회에 이롭게 작용해야 한다는 것. 하여 오늘도 '이로운 기사'를 쓰기 위해, 아직은 모두 낯선 세계 속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기고자 : 천현우 Alookso 에디터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80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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