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一事一言] 우크라이나 청년 사바틴

    손장원 '건축가의 엽서' 저자·인천재능대 교수

    발행일 : 2022.04.05 / 문화 A22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인천항 뒤편에는 나지막한 산 하나가 있다. 해발고도 69m에 불과해 산이란 말보다 언덕이 더 적당한 이곳은 19세기 말 인천 개항과 함께 제물포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다. 정상에는 서울 파고다공원보다 9년 앞서 근대식 공원이 들어섰고, 남측 경사면을 따라 서양식 건물이 수십 채 세워져 유럽 여느 도시에 뒤지지 않는 마을이 되었다.

    홈링거양행, 세창양행과 사택, 신동공사, 제물포 구락부 같은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는 아파나시 세레딘 사바틴이다. 응봉산을 '사바틴의 언덕'으로 불러도 과하지 않은 까닭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독일 출신 외교관 묄렌도르프를 만나 1883년 가을 우리나라에 온 사바틴은 21년 동안 서울과 인천에서 각각 10여 년을 거주하면서 근대 건축물을 남겼다. 서울에서 살 때는 고종을 호위하는 시위대 부대장으로 경복궁 옥호루에 머물렀다. 스스로를 '대한제국 황제 폐하의 건축가'로 칭할 만큼 구성헌, 중명전, 돈덕전, 정관헌 등 여러 궁궐 건축에 관여했다. 영광스럽던 그의 행보는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면서 막을 내린다.

    우리나라를 떠난 뒤 베일에 가렸던 그의 행적이 밝혀지면서 그를 기억하는 행사가 이어졌다. 2020년에는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여 문화재청 주관으로 '1883 러시아 청년 사바틴, 조선에 오다'전이 열렸다. 전시 장소는 그가 설계한 덕수궁 중명전이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문화재청장과 주한 러시아 대사가 언론 간담회에 직접 참여할 만큼 양국 정부가 정성을 기울인 행사였다. 그런데 사바틴은 러시아 청년이 아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그의 고향이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폴란드 등 주변 강대국에 병합된 상태였기에 사바틴은 러시아 교육을 받고, 러시아 해군 항해사가 되어 동아시아로 향했다. 사바틴의 고국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손기정 선수처럼 사바틴도 '러시아 청년'이 되어 조선에 왔기 때문이다.
    기고자 : 손장원 '건축가의 엽서' 저자·인천재능대 교수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997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