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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일 3국의 각축이 치열하다. 당사자인 한국을 배제한 가운데 한반도 문제가 논의되고 있지 않나 하는 불안을 떨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이런 취지의 국제정치 칼럼을 보면서 느닷없이 환율 문제가 머리에 떠올랐다. 미·중·일이 벌이는 건곤일척의 ‘환율 전쟁’에서 한국만 ‘왕따’를 당하는 현실과 어쩌면 이렇게 닮은 꼴인가.

뒤를 이어 엔저(低)를 배경으로 일본 경제가 최고 기록 행진을 이어간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기자의 우려는 더욱 커졌다. 반면 원고(高)에 직면한 한국 경제는 기업 이익이 3년 연속 감소하는 등 피해자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워낙 첨예한 이해가 걸린 환율이니만큼 때로는 국가 간에 환율 전쟁이라 불릴 만큼 살벌한 대립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이 왕따를 당한다니 웬 말인가.

지금 세계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는 미국의 거대한 무역적자와 중·일의 거대한 무역흑자로 대변되는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이다.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일이 통화 가치를 높이는 피해 분담(이에 따른 무역수지 악화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본 엔화 가치는 오히려 최근에 떨어지는 추세이고, 중국 위안화 가치는 소폭 상승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엔화 약세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고, 중국에는 위안화 가치를 올리라는 압력을 넣어 보지만 중국이 버티는 모습이다.

와중에 한국만 직격탄을 맞아 원화 가치가 2002년 4월 말에 비해 무려 40% 상승한 반면, 엔화와 위안화 가치는 각각 7% 남짓씩 오르는 데 그쳤다.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순이익이 17% 증가해 현대차의 8배가 넘은 데는 이처럼 유리한 환율이 한몫 했음은 물론이다.

경제 호황에 경상수지 흑자가 너무 쌓여 걱정인 중·일과 달리, 경제 부진에 경상수지 적자를 걱정하는 한국만 통화 가치가 치솟으니 기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직 고위 경제관료 A씨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한국만 세계 경제 불균형 해소의 무거운 짐을 한몸에 진 꼴”이라고 말했다.

지난 달 워싱턴에서 열린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는 공고해진 미·일 동맹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장이 됐다. 당시 유럽연합(EU)에서 “엔화 약세를 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발표문에는 엔화 문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던 것. “미국이 거들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앞서 작년 12월 베이징에선 미·중 양국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등 경제 수장들이 한데 모여 대규모 전략 협의를 벌였다. 환율 문제를 놓고 양측이 언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그 뒤에도 중국은 언제나 그랬듯 자기 페이스대로 뚜벅이 걸음이다.

최근 미·중·일, 그리고 EU가 환율을 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은 1985년 플라자합의(선진 5개국이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로 합의한 것) 당시를 연상시킨다. 당시 최대 피해국은 일본으로, 엔화 가치가 급격히 올라 10년 장기 불황을 맞이했다. 그러나 지금 만일 2차 플라자합의가 이뤄진다면 그 피해자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jhl@chosun.com)

이지훈 경제부 차장대우 기고자 : 이지훈
장르 : 고정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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