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10여 년 전 도쿄에서 “하루 저녁에 여러 군데에서 공연이 열려 음악 팬들이 어느 곳에 가야 할지 고민한다”는 말을 들었다. 마치 꿈나라 이야기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 그 꿈은 매일 서울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서울은 물론 수도권과 지방 주요 도시에도 공연장이 늘어나고, 하루 저녁에도 여러 군데에서 공연이 열리며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다. 특히 국제적 명성을 가진 연주자와 단체들도 빼놓지 않고 서울을 방문한다.

그러나 음악을 사랑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공연장을 떠올리면 무언가 섭섭하고 아쉬운 심정을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너무나 높은 티켓 가격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서울만큼 공연 티켓이 비싼 도시는 흔치 않다.

2년 전 베를린 필하모니 내한 공연은 최고석이 45만원을 호가했으며 빈 필하모니 공연도 40만원이었다. 외국 성악가가 나오는 국내 오페라도 30만원을 넘기는 일이 흔하다. 과연 적당한 가격일까?

항공비와 숙식비를 감안해도 비싼 건 마찬가지다. 밀라노 스칼라 극장의 최고석이 보통 200유로(24만여원) 수준이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도 300유로를 넘기는 경우가 드물다. 사실 공연 한 번에 몇 십 만원을 호가한다면, 즐겁게 많은 공연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애호가들 사이에서조차 ‘공연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비싼 자리에 앉는 사람들은 음악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치부하는 우려할 만한 조짐마저 벌어지고 있다.

음악을 진정 좋아하는 사람들은 몇 달 전부터 빠듯한 가계 수입을 쪼개서 싼 자리를 힘들게 예약하는 반면, 사회적 지위가 있거나 여유 있는 사람들은 음악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좋은 자리에 앉는다는 생각이다.

좋은 자리에 앉는 사람들 중에서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 리 없다. 공연계의 이런 ‘양극화’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병리가 되는 것 같아 크게 우려된다.

왜 우리나라의 티켓은 이토록 비싼 것일까?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 우선 기획자들이 티켓 가격을 책정할 때 전체 비용을 전체 좌석수로 나누어서 결정하지 않는다. 안 팔리는 표를 미리 감안하고 가격을 결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둘째 후원이다. 요즘 많은 기업체들이 공연을 후원한다고 하지만, 진정한 후원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기업이 후원을 하면 보통 해당 액수와 비슷한 만큼의 티켓을 가져간다.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외국의 기업들은 큰 후원금을 내고도 필요한 티켓은 그만큼 다시 구입한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기업 후원은 ‘입도선매’이자 또 하나의 마케팅이다.

셋째 할인 제도다. 할인을 해주면 사람들은 기꺼이 티켓을 사게 된다. 그러나 이미 할인가를 감안하고 액면가가 높게 책정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 제 돈 내고 구입한 관객들만 피해를 본다. 할인 제도를 남발하기에 앞서 관객 모두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넷째 ‘비싸면 좋은 공연으로 보일 것’이라는 기획자들의 생각도 한몫 한다. 더불어 이런 비싼 가격 책정에는 과대 포장이 뒤따른다. 한국에만 오면 죄다 세계적인 연주가요, 정상의 악단이다.

공연계가 이만큼 발전했는데도 그 비용을 여전히 관객의 주머니에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정부나 공공 기관들은 아직도 “예술은 개인의 취미이며 비용은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전근대적인 생각에 머물고 있다. 공연장이 애호가들에게도 불편한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공연을 찾을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박종호 음악칼럼니스트 기고자 : 박종호
장르 : 고정물 칼럼
본문자수 : 1972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