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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 넘쳐난다. 폭포수처럼 밀려드는 정보 중에서 과연 무엇이 진실에 가깝고 어느 것이 허위인가를 가늠하기 힘들다. 인터넷,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을 통해 상업적이든 정치적이든 모종의 의도를 숨긴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럴수록 참되고 품질 좋은 정보를 골라서 제공해 주는 역할은 어려워지고 또 그만큼 중요해진다. 그래서 공영방송 제도는 소중하다.

한 번 간 유행이 죽지 않고 돌아오는 것처럼, KBS 수신료 인상에 대한 논의는 몇 년에 한 번씩 등장했다가 사라지곤 한다. 물론 지난 27년간이나 2500원으로 묶여 있는 수신료를 인상할 것이냐 여부에 대한 문제는 방송의 디지털 전환이라는 특수 상황이 아니더라도 현실적으로 고려해 봄 직하다. 지천으로 깔린 그저 그런 수준의 정보나 오락 프로그램과 다른, 차별화된 고품질의 방송을 원한다면 이에 상응하는 투자는 마땅히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수신료를 내는 국민들 사이에, KBS를 계속 지금 방식대로 지원하고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공고하지 않다는 데 있다. 공영방송제도를 우리가 유지하는 것은 필수가 아니라 사회적 선택이다. 공영방송제도를 갖고 있지 않은 나라도 많다. 또 공영방송제도를 채택한다고 해도 꼭 수신료를 의무적으로 부과해 전 국민에게서 일괄적으로 거두는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것만이 공영방송 재원확보를 위한 유일한 수단인 것도 아니다.

수신료 인상에 대한 논의는 과거에도 이미 수차례 있었다. 그러나 그에 맞서 아직은 아니라는 반론도 그때마다 있어 왔다. 반론은 주로 KBS가 경영에 관한 제반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정한 보도와 엄격한 예산 지출에 대한 약속을 한 뒤 실천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었다. 최근 여러 시민단체 성명서에서 시청료 인상의 선결과제로 요구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부분이다.

다른 상업적 방송과의 경쟁을 도외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공익성 있고 품질 좋은 방송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전체 가구의 80% 이상이 케이블TV나 위성방송을 통해 100개가 넘는 채널을 보는 상황에서 다른 방송사의 프로그램과 ‘별반 다르지 않은’ 콘텐트를 제공하는 어느 거대한 방송사를 유지시키기 위해 무조건 돈을 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반발하는 시청자들은 ‘KBS를 보지 않는다’,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에 공감하지 않는다’ 혹은 ‘나는 수신료를 내지 않는 대신 광고를 보면서 방송을 보겠다’는 등의 다양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공영방송제도를 유지할 것인지, 유지키로 했다면 그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사회적 논의가 한번쯤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공익성 있는 정보와 오락 프로그램을 공영방송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얻을 수 있다면 그 제작 주체가 특정 조직이건 개인이건 거기에 대해서 공적지원을 하면 되는 것이지 꼭 공영방송이라는 수단에만 의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지난해 영국 BBC가 자사 인터넷 사이트에 광고를 게재하려고 하다 내부 저항에 부닥쳐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만큼 조직 내부에서 공영방송의 차별성에 대한 인식이 투철하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사는 끊임없이 그 존재의 이유에 대해 시민의 합의와 신뢰를 얻는 심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리의 KBS는 과연 이 지속적인 심사를 통과했는가? KBS 수신료는 KBS가 국민이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경우 주어지는 것이지 그냥 주어지는 백지수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김은미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기고자 : 김은미
장르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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