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황제’가 또 무너졌다. 역시나 클레이 코트 위에서 무릎을 꿇었다.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 로저 페더러(Federer·스위스)가 11일(한국 시각)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ATP(남자프로테니스) 마스터스시리즈 단식 3회전에서 필리포 볼란드리(이탈리아·53위)에게 0대2(2―6 4―6)로 완패했다. 페더러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일단 나 자신을 분석하고, 실전 경험보다 연습을 늘려야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4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 목표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페더러는 지금까지 10개의 메이저 우승컵을 차지했지만 유독 프랑스오픈과는 인연이 없었다.

윔블던 같은 잔디 코트에서 ‘무적’인 페더러가 왜 클레이 코트에서는 힘을 못 쓸까. 점토질로 만든 클레이 코트는 습하고 무르다. 코트에 한 번 공이 닿으면 급격하게 볼 스피드가 줄어든다. 빠른 풋워크를 바탕으로 코너를 날카롭게 찌르는 페더러의 스트로크를 받아 넘길 여력이 생기는 것이다. 페더러 입장에서는 바운드가 느린 코트라 결정구를 날리기 어렵고, 랠리가 길어지면서 체력적인 부담이 커진다. 강한 서브와 스트로크를 주무기로 메이저 통산 최다 우승 기록(14회)에 빛나는 피트 샘프러스(미국·은퇴)도 클레이 코트인 프랑스오픈에서는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올해에만 네 번째 패배. ‘테니스 황제’를 꺾는 이변이 너무 자주 생기다 보니 ‘슬럼프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단식 41연승의 ‘무적 행진’을 벌이던 페더러는 지난 3월 마스터스시리즈 인디언웰스대회에서 무명이나 다름없던 기예르모 카나스(아르헨티나·21위)에게 발목을 잡혔다. 2주 뒤 소니에릭손오픈에서 또다시 카나스에게 무릎을 꿇어 체면을 구겼고, 지난달 몬테카를로대회 결승에선 ‘라이벌’ 라파엘 나달(스페인·2위)에게 우승컵을 내줬다. 나달과는 클레이코트에서 5번 싸워 모두 졌고, 역대 전적은 3승7패로 더 나빠졌다.

(진중언 기자 jinmir@chosun.com)

기고자 : 진중언
본문자수 : 107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