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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밤 법원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55)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이른바 ‘사적 구제(私的 救濟)’는 용납할 수 없다는 사법당국의 엄벌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경찰·검찰 등 국가기관을 통하지 않고, 개인적인 피해를 집단보복으로 갚는 행위를 엄격히 다루지 않으면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결과, 김 회장은 폭력 혐의로 구속되는 첫 재벌 총수가 됐다. 그는 12일 0시20분쯤 서울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영장 발부 직후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에 선 그는 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담담합니다”라고 말했다.



법원은 김 회장이 기업의 총수 지위에 있는 만큼, 지시·공모 관계에 있는 부하직원들과 증거를 인멸하고 조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광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영장 발부 사유로 “피의자들(김 회장과 경호과장 진모씨 등)이 영장에 기재된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또 “수사기록에 따르면 피의자들은 그동안의 수사과정에서 공범이나 증인 등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증거를 인멸하려고 시도해 왔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이날 법정에서는 일부 혐의를 시인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던 경찰 조사 때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이는 구속만은 피하려는 전략적 선회로 풀이된다. 통상 피의자가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하면 구속가능성이 높아진다. 김 회장은 경찰 조사에서는 숨긴 사건 전말을 밝히면서, “순간적으로 아버지로서 감정이 격해서 일을 저질렀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나 이 같은 마지막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변경된 사정만으로 증거인멸의 염려가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이 부장판사는 실질심사 후 발표를 세 차례 연기하는 등 8시간의 장고(長考) 끝에 구속 결정을 내렸다.

김 회장에게나 한화그룹에 이날은 가장 긴 하루였다. 김 회장은 이날 아침 경찰 호송차를 타고 자택을 나서 법정과 검찰청사 구치감을 오가며 초초한 시간을 보냈다.

김 회장은 앞서 오전 10시17분쯤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했다. 이 순간 포토라인이 무너져 김 회장은 호송경찰, 기자들에 떠밀려 다니는 수모를 당했다. 사건 발생 60여 일이 지난 이날 그의 시선은 자주 땅을 향했고 어깨는 아래로 처졌다. 김 회장은 “심경이 어떠냐”는 질문에 “다시 한 번 국민들에게…”라고 사과의 말문을 열었지만 카메라 기자들의 고함에 목소리가 묻혀 버렸다.

김 회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오전 10시40분부터 시작됐다. 오후 2시40분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김 회장은 “국민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저의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심려를 끼쳐 드린 것에 대해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하고 사과 드린다”면서 “저 같은 어리석은 아비가 더 이상 안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길성 기자 atticus@chosun.com)

(곽창렬 기자 lions3639@chosun.com)

<그래픽>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 일지 기고자 : 이길성 곽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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