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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용 초파리를 키우는 엄마… 딸은 여기서 문학을 발견하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가 3월의 소설을 추천합니다. 이달 독회의 추천작은 2권.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임솔아)와 '두고 온 것'(강영숙)입니다. 심사평 전문은 chosun.com에 싣습니다.

임솔아의 소설은 인물과 사건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평범하다. 소설에는 부조리한 억압도, 황당한 상황도, 심각한 갈등도, 엄청난 재난도 등장하지 않는다. 작품 끝에 가서 해명되는 사건도 없고, 과거를 사로잡고 있는 상처의 기억도 찾아볼 수 없다. 통상적 소설 설정이나 기법과 거리를 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삶의 평범성을 이야기하기. 이건 아무렇게나 쉽게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이 아니다.

삶의 평범성을 포착하기 위해서 작가가 주목하는 지점은 다름 아닌 '역할'이다. 임솔아 소설의 인물들은 타인의 욕망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을 자신의 역할로 수행하며 스스로를 연출한다. 단편 '초파리 돌보기'의 원영은 실험용 초파리 배양실에서 일하며 딸 지유를 소설가로 키워냈다. 엄마가 희소병에 걸려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딸은 유해한 작업 환경 때문이라고 여기고 이를 소설로 쓰고자 한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의 욕망(마음)을 헤아리며 모종의 역할극을 펼친다. 엄마는 딸이 소설을 욕망하고 있음을 알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던져주는 소설가 역할을 연기한다. 반면에 딸은 엄마가 자신이 주인공인 소설을 소망한다고 생각하기에, 엄마의 소설을 끈질기게 요청하는 편집자 역할을 담당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엄마는 유전자가 서로 다른 초파리들을 붓으로 분류하는 일을 했다. 이미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자 하는 엄마의 무의식적 욕망을, 소설가인 딸이 엄마에게 되돌려주고자 욕망했고, 엄마는 딸의 욕망을 위해서 소설가 역할을 연기한 것이다. 작품집 제목을 원용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엄마의 삶이 이야기되는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녀의 삶 속에는, 그 역시 평범하기는 마찬가지겠지만, 아직 말하지 않은 삶의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네 삶도 소설의 인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임솔아

―2013년 등단,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장편 ‘최선의 삶’,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 등

―문학동네 대학소설상(2015), 신동엽문학상(2017), 문지문학상(2020) 기고자 :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 (정과리·구효서·이승우·김인숙·김동식)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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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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