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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현지 시각) 미 반도체 기업 인텔의 유럽 투자 발표 온라인 행사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이 등장했다. 이날 인텔은 향후 10년간 유럽에 반도체 개발과 생산을 위해 800억유로(약 107조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유럽은 혁신의 본고장이다. 우리는 비즈니스에 열려 있다."

첨단 반도체 제조업 측면에서 보면 유럽은 사실 '변방'이다.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율은 9%에 불과하다. 하지만 유럽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EU반도체칩법을 제정했고, 반도체 부문에 공공과 민간에서 430억유로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세계 반도체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지금의 2배인 20%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유럽은 이번 인텔의 투자를 유치하며 막대한 세금 혜택과 재정 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전 세계 기업에 공개 러브콜을 보낸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발언은 반(反)기업 정서가 팽배한 한국에선 좀체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한국은 삼성전자라는 세계 반도체 매출 1위 기업을 갖고 있지만, '삼성 특혜'라는 시선을 의식해 전폭적 지원을 하지 못한다. 정치 셈법으로 계류하다 지난 1월 가까스로 통과된 반도체특별법은 업계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평가다. 전 세계에서 펼쳐지는 테크 패권 전쟁에 국가의 지원 없이 삼성전자 혼자 나선 꼴이다.

비즈니스에 닫혀 있는 한국의 모습은 산업 전반에서 찾을 수 있다. 취지는 좋지만 모호한 규정과 예외 없는 일괄 적용으로 부작용이 우려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제 등 각종 규제가 도사린다. 매년 임금 인상이 제1 목표인 강성 노조도 있다. 기업인들이 "문제가 있다"고 반복적으로 말해도 합리적인 방향으로 수정되지 않는다. 한국은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건 세계가 다 안다. 일전에 만났던 한 전자기기 부품 관련 중소기업 대표는 절대 자식에게 사업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지원도 없이 빡빡한 규제에 씨름하는 삶을 대물림하기 싫다는 이유였다.

문제가 있다는 건 모두 아는데도 기업 환경은 변하지 않고 있다. 지난 5년간 해외로 나간 한국 기업은 약 1만5000개인데, 같은 기간 한국으로 돌아온 기업은 100여 곳에 불과하다. 실리콘밸리에서 세계를 흔드는 테크 기업들이 나오는 배경엔 초기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막대한 투자와 무엇이든 하도록 독려하는 문화가 있다. 무조건 의무적으로 일괄 적용하는 규제는 없다. 일단 비즈니스가 되게 하고, 잘못된 기업 관행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이후 처벌하면 된다. "한국도 비즈니스에 열려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와야 한다. 기고자 : 김성민 실리콘밸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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