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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별

취재팀

강효상

박정훈

강경희 기자

최근 민영화된 모은행장이 「민영화후 가장 좋은 점이 뭐든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즉석에서 『해외 출장을 떠날 때 재정경제원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게 됐다』고 털어놨다.

은행장의 비지니스성 해외출장이 재경원의 사전허가사항이라고 씌어진 규정은 한 군데도 없다.

하지만 국책은행장들은 재경원 허가를 받지 않고서는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고 한다. 반대로 경제부총리가 외국의 국제회의에서 연설할 때는 청중으로 동원되기도 한다.

산업은행은 과천에 있는 재정경제원에 셔틀 봉고버스를 보낸다. 어떤 날은 버스가 꽉차는 날도 있다.

재경원과 협의할 업무가 많다보니 과천청사에 들락거리는 은행원이 늘고、 결국 매일 두차례 셔틀버스를 운행하게 됐다는 얘기다.

재정경제원은 지난 94년12월 정부 조직개편으로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합쳐져 탄생한 부처.

통합의 배경에는 두 부처의 권한을 축소시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명분이 있었으나、 출범 1년4개월이 지나도록 산하기관의 팔을 비트는 「악습」은 그대로 남아있다.

국회의원 총선을 앞둔 이달초. 재경원 금융정책실에는 비상이 걸렸다. 상부에서 떨어진 지시는 「서주산업을 살려라」는 것.

충북 청주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한 윤석민(윤석민)씨가 실질적인 오너인 서주산업이 선거를 며칠 앞두고 위기에 몰리자、 재경원 금융정책실이 서주산업 부도 막기에 총동원된 것. 금융정책실 간부들은 평소 안면있는 금융기관 간부를 전화로 호출、 『서주산업 어음을 돌리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총선이 끝나자 서주산업은 부도처리됐고、 재경원의 지시에 못이겨 어음을 연장해준 금융기관은 요즘 휴지로 바뀐 어음조각만 붙들고 재경원을 성토하고 있다.

재경원의 간섭행정이나 강압행정은 금융권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다. 작년 9월 미국과 자동차시장 개방 협상때엔 재경원의 오만함이 돋보였다.

협상의제로 자동차 특별소비세 문제가 떠오르자、 재경원은 『세제(세제)문제는 재경원의 고유권한이며、 타부처가 간여할 수 없다』며 『직접 협상해야 겠다』고 우겼다. 결국 재경원은 대외협상창구인 외무부나 통산부의 반대를 누르고 공식회담 일주일전에 대외경제국장을 은밀히 미국에 파견、 별도로 비밀협상을 벌였다.

다른 경제부처들은 재경원을 빗대 「녹실(녹실)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녹실은 과천 정부종합청사 1동 건물 7층 경제부총리 집무실에 딸린 작은 소회의실.

과거 경제장관들은 이 녹실에서 만나 중요한 경제정책을 협의했었다.

이런 녹실이 사라졌다는 것은 한마디로 부처간 정책조정 기능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비판이다. 서로 견제해오던 기획원과 재무부가 통합되다보니、 재경원의 「방침통보」만 존재하고、 경제부처간에 토론과 조정은 찾아볼 수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재경원의 1급 간부회의가 사실상 경제장관회의라는 자조 섞인 말이 타부처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3월15일 개최된 경제장관 회의에서는 멤버 11명중 5명이 대리 참석해 라웅배(나웅배)부총리가 화를 낸 일이 있었다. 그러나 타부처 장관들은 『재경원 1급 공무원들이 아침에 커피 한잔하면서 결정해버리면 끝장인데、 장관들끼리 만나봐야 무슨 소용있느냐』고 수근거린다.

재경원의 고위 간부조차 『행정규제 완화를 외치고 자유경쟁을 주장하던 「리버럴(진취적인)파」 기획원은 사라지고、 행정규제의 원조(원조)격인 「골수보수파」 재무부만 살아남은 인상』라고 실토했다.

모든 부처 일에 시시콜콜 개입하던 기획원의 나쁜 행정과、 담합행정에 이골이 나있던 재무부의 나쁜 점이 융합된 결과를 초래했다는 얘기다.

예를들어 재경원은 세제및 금융행정、 예산편성및 배정이라는 거대한 국가업무부터 쓰레기 봉투값이나 초코파이값 인상 같은 사소한 일에도 개입한다.

더구나 막강한 예산 편성권을 갖고있어 각 부서마다 숨겨놓은 「비밀판공비」 성격의 여유자금도 다른 부처 보다는 넉넉하며、 자체 인력도 여유있게 유지하고 있다. 현재 「인공위성」이라고 불리는 1백50여명의 별도정원이 재경원 주변 연구소와 산하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인사적체도 재경원의 커다란 고민거리다. 지난18일 열린 차관회의에서는 인사적체에 눌린 재경원이 타부처 발목잡기에 나섰다가 망신을 당했다.

당시 안건은 서기관으로서 5년이 지나면 부이사관으로 자동승진할 수있도록 하자는 것.

재경원 리환균(이환균)차관을 대리해 참석한 안병우(안병우) 기획관리실장은 『7년이내 승진은 안된다』고 우겼으나、 다른 부처들이 일제히 5년안에 찬성했다. 인사적체가 심한 재경원으로선 타부처 공무원들이 빨리 승진하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최근 모 재경원 이사관급 국장은 타부처 1급자리 승진제의를 받고도 거절했다. 재경원 공무원이라면 대개는 한사코 재경원을 떠나지 않으려 하고있다. 이 때문에 정부내 우수 인력이 재경원에만 몰려있는 부작용까지 나타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