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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 항목 가격 게시 의무화 됐는데…

"일단 강아지를 데려와 보세요. 광견병이나 다른 질병들, 종합 백신 접종까지 다 하면 10만원 좀 넘을 겁니다."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동물병원. 본지 기자가 수의사에게 강아지 종합 백신 접종 비용을 묻자 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병원 내부에 '진료비 안내' 게시물은 보이지 않았다. 병원 홈페이지도 없어 온라인상에서 가격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수의사법에 따르면, 이러한 관행들은 모두 불법이다. 지난 5일부터 모든 동물병원의 진료 비용 게시가 의무화됐기 때문이다. 작년 1월부터 수의사를 2명 이상 둔 동물병원은 진료비 게시가 의무였다. 하지만 정부는 수의사가 1명인 동물병원은 준비 기간을 감안해 1년간 유예 기간을 줬다. 동물병원 4900여 곳 중 수의사 1명인 병원이 3600여 곳인 점을 감안하면(2022년 6월 기준) 올해부터 실질적으로 법이 시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본지가 지난 7일부터 17일까지 서울 마포구, 용산구, 은평구, 성동구 등 수의사가 한 명 근무하는 동물병원 22곳을 돌아보니 절반가량인 10곳이 진료비를 온·오프라인에 게시하지 않거나 수기로 작성해 줬다. 진료비가 투명하지 않다 보니 종합 백신 가격을 기준으로 가장 저렴한 곳이 2만원, 가장 비싼 곳은 3만5000원이었다.

수의사법 20조와 세부 시행규칙에 따르면, 동물병원은 병원 접수 창구나 진료실 등 눈에 띄는 장소에 책자나 인쇄물, 벽보로 진료비를 게시해야 한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진료비를 올려도 된다. 게시 항목은 초·재진 진찰비, 입원비, 전혈구 검사, 엑스선 검사 등 11개다. 진료비를 게시하지 않거나, 게시 금액 이상으로 진료비를 받으면 1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되고 시정명령이 떨어진다. 시정명령을 불이행하면 1년 이내 영업정지까지 내려질 수 있다.

지난 8일 방문한 서울 용산구 한 동물병원에서는 진료 비용 게시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직원에게 광견병 예방접종 가격을 묻자, 직원은 "2만5000원에서 3만원 정도"라고 답했다. 가격표를 따로 볼 수 있느냐고 했지만, 직원은 "저희는 그런 것이 없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한 동물병원 역시 병원 내부나 홈페이지에 진료 비용 안내는 보이지 않았다.

진료비 팸플릿을 요청하면 뒤늦게 꺼내주거나, 진료비를 수기로 적어주는 병원들도 있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동물병원은 '백신 비용을 볼 수 있느냐'고 2~3차례 묻자 그제야 진료비 비용표를 꺼내 보여줬다.

서울 성동구의 한 동물병원 수의사는 백신 가격을 물어보자 구두로 설명하다가 "반려동물 건강 수첩에 적어주겠다"며 가격을 따로 적어줬다. 모두 '알아보기 쉬운 장소에 부착해야 한다'는 지침을 어긴 것이다.

시민들은 병원들의 반려동물 진료비 게시 의무 불이행에 "불편은 반려인들의 몫"이라고 했다. 김서이(24)씨는 "며칠 전 반려견이 구토를 해 동네 동물병원에서 치료했는데 10만원 가까이 나왔다"며 "진료비 사전 고지도 없었고 안내문도 따로 없었는데 진료가 다 끝나서야 가격을 알게 되어 황당했다"고 했다. 김씨는 "작은 병원들은 진료비 게시도 안 되고 부르는 대로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빨리 개선됐으면 한다"고 했다. 기고자 : 김승현 기자 김병권 기자 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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