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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홀 절반은 수도관 손상 때문

지난 9일 오후 전북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의 한 식당 앞 도로에 깊이 최대 3m쯤 되는 구덩이가 생겼다. '싱크홀'이었다. 식당 입구에서 불과 서너걸음 떨어져 있어 자칫 대형 사고가 날 수 있었다. 지난 3일 광주광역시 서구 한 교차로에서도 2m 깊이의 싱크홀이 생겼다. 당시 도로를 달리던 승용차 바퀴가 푹 빠지면서 차가 망가졌다. 자칫 연쇄 추돌 등으로 이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지난 1월 말에는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한 공사 현장 주변을 걷던 20대 여성이 갑자기 생겨난 3m 깊이 싱크홀에 빠지는 일도 있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매년 전국적으로 이런 싱크홀이 100~200개 안팎 발생한다. 이 중 50% 정도가 지하에 매설된 수도관 손상이 원인이었다. 낡아서 깨지거나 금이 간 수도관에서 새어 나온 물이 주변 땅을 적시며 주저앉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최근같이 날씨가 풀릴 때 싱크홀이 생겨날 우려가 더 크다. 겨우내 지하에서 얼어있던 땅이 녹으면서 경도(硬度)가 떨어져 땅이 쉽게 아래로 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싱크홀의 주요 원인인 노후 수도관 상태를 면밀히 점검해야 대형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언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지하 수도관이 전국 6만㎞에 달하는 상태다. 국토부가 관리하는 '지하공간통합지도'에 따르면 전국 상·하수도관은 총 38만㎞에 이르는데, 이 중 15%가 관리 밖에 있는 깜깜이 수도관인 셈이다. 최명기 동신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오래된 도심일수록 연식을 모르는 수도관이 많다"면서 "사실상 발 아래 지뢰가 깔린 셈인데, 지자체에서는 사고가 나야 관심을 가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도 "오래된 도심인 중구와 종로구에 매설 연도를 모르는 배관들이 있는데, 대부분 40년이 훌쩍 넘은 노후 수도관으로 추정한다"라고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국토부는 지자체에서 수십년 전 수도관을 매설할 때 기록을 충실히 남기지 않은 탓이라고 설명했다.

건설·토목업계 안팎에서는 "공사를 하려고 지자체가 가지고 있는 도면에 따라 땅을 파보면 엉뚱한 곳에 수도관이 매설돼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지자체 도면에는 몇 년도에 어떤 재료로 관을 깔았는지 반드시 포함돼 있어야 하는데, 그 기록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틀린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싱크홀을 예방하기 위한 안전 규정이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크고 작은 싱크홀 사고가 수년째 불거지면서 지난 2018년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됐는데, 이 법에 따라 각 지자체는 수도관 등 지하시설물을 연 1회 이상 점검해야 한다. 그러나 평소 지반 침하 우려가 없다면 점검을 생략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이 있다. 그 결과 지자체들이 가끔 수시 점검에만 나설 뿐 예산·인력 부족 등을 거론하면서 정기 점검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지자체가 노후 수도관을 새로 교체하고 있지만 막대한 비용 탓에 적극적이지도 않다. 서울시의 경우 올해 노후 상수도관 58㎞를 교체하는 비용으로 915억원을 책정해둔 상태다.

전문가들은 막대한 비용 탓에 노후 수도관을 전부 교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정기 점검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류기정 한국지하안전협회 회장은 "노후화로 의심스러운 수도관이 있는 곳은 땅을 파서 표본을 확인하거나 수도관 안에 CCTV를 부착한 소형 로봇 등을 투입하는 등 꾸준히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고자 : 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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