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여론 크게 악화

미 하원의 과다대출 스캔들은 우리나라 같으면 지역구 활동 등으로 항상 돈에 쪼들리는 의원들이 세비를 몇개월씩 가불해서 미리 당겨쓰는 경우가 흔히있는 일이기 때문에 별문제가 안되는 사건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의원들이 일반 시중은행에서는 예금잔고 없이는 수표발행이 불가능한데도 이것을 내부적으로 편법을 써서 관행으로 이용해왔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하원은행은 전-현직 의원들의 세비를 기금으로 운영되는 일종의 구내은행이다. 의원들의 세비는 자동적으로 이 은행에 예치되고 의원들은 이 은행의 수표를 발행해 필요한 돈을 쓰고 있다. 88년 7월1일에 개설한 이 은행은 내부적으로 현재 계좌에 남아있는 돈과 다음달 세비를 합친 돈을 예금잔고로 인정하는 편법을 써왔다. 즉 한달 세비는 언제든지 가불형식으로 벌과금 없이 수표도 발행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은행측이 잔고없이 발행된 수표로 결제를 해줘 부도처리되지는 않았다.

이와함께 2년이상 계좌를 개설하고 있는 의원에게는 계좌개설 기간의 20%에 해당하는 기간을 기존예금 잔고에다 그 기간만큼의 세비분을 합친 것을 잔고로 간주해 주고 수표를 발행하는 것을 묵인해 주었다.

하원의원의 임기가 2년이니까 이같은 관행은 재선이상의 의원만 이용할 수가 있다. 하원은행이 개설된뒤 이 문제로 말썽이난 작년 10월 문을 닫기 전까지 39개월간 이 관행에 따라 20% 기간에 해당하는 최소한 8개월간 세비를 초과해 공수표를 남발한 전현직 의원이 바로 상습범 으로 낙인 찍혀 윤리위에서 명단을 공개키로 했던 24명이다.

하원의원들은 현재 세금 및 기타 공제를 하기전 연간 12만9천5백달러(월 1만7백92달러)를 세비로 받고 있다. 하원의원들은 임기가 6년인 상원의원들과는 달리 2년마다 선거를 치러야 하고 지역구민을 일일이 접촉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돈에 쪼들리고 있다.

반면 1개 주에서 2명을 뽑는 상원의원들은 주민접촉보다는 신문이나 tv 등 언론매체를 통해 선거운동을 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목돈이 필요없고 또 대개 하원의원에 비해 자금사정이 좋은 편이다. 하원은 이같은 의원들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고려해 자체 은행을 설립,편법으로 의원들에게 편의를 봐주다 들통이 나 망신을 당하게 됐다.

총무국장 사표 수리

이번 사건의 시발이 된 것은 작년 9월 서무과가 의원들의 공수표 남발에 대한 세부자료를 공개하면서 비롯됐다. 자료공개를 통해 이 사실을 처음 알게된 국민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여론이 악화되자 윤리위가 진상조사에 나섰고,5개월간의 조사끝에 지난 12일 파문의 확대를 막기위해 상습 공수표 발행자 24명의 명단만 공개키로 결정했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분노가 가라앉지를 않고 선거를 앞두고 소수당인 공화당이 민주당을 궁지로 몰기위해 전면 공개를 주장하고 나서 민주당도 어쩔 수 없이 이에 동의하고 말았다.

윤리위가 공개한 조사자료를 보면 공수표를 가장 많이 남발한 의원은 35개월간이나 세비를 초과해 모두 1천여장의 수표를 발행한 것으로 돼 있다. 상습자로 낙인찍힌 24명이 발행한 공수표는 적어도 89만9천만달러는 넘고있다. 또 1백명의 의원이 45장 이상의 공수표를 발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단이 공개되면 타격은 민주당이 더 입을 것은 뻔하다.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경제개혁안의 의회통과 시한으로 정한 오는 20일 이전에 대의회 및 민주당에 대한 압력용의 하나로 명단의 완전공개를 공화당이 들고 나왔다는 분석도 있다.

의회전체의 신뢰도는 곤두박질할지 몰라도 공화당은 상대적으로 이득을 볼것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민주당 소속 폴리하원 의장도 명단에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의 사임설이 의회에서 나오고 있다.

의원들은 전원 명단공개가 결정되자 각기 명단이 공표되기전에 미리 고백 을 해 유권자들의 호된 질책을 조금이라도 면해보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날 하룻동안 선거구 주민들에게 자신의 공수표 발행 내역을 고백한 의원이 60여명에 이르고 있다.

민주당 선거에 영향

게리 시코스키 의원(민 미네소타)은 그동안 6백71장(11만9천9백66.97달러)을 찰스 월슨의원(민 텍사스)은 75~85장의 공수표를 발행했다고 각각 공표했다.

하원은 공수표 남발외에도 지난 6개월간 구내식당에서의 의원식대 미지불 금액이 70만달러를 넘어섰고 구내 우체국 직원 4명이 3만5천달러를 훔쳤으며 우체국 직원 1명은 코카인을 팔아온 사실이 드러나는 등 연이은 스캔들로 얼룩져 왔다.

또한 이같은 연쇄 스캔들로 그동안 각 지역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의원임기 제한론이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공화당 하원원내총무 뉴트 깅그리치(조지아) 의원은 "공수표를 발행한 의원중 30~65명이 11월 선거에서 낙선할 것"이라고 예견했으나 정치분석가들은 경기침체로 인해 워싱턴의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더깊어 낙선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민주당 의회선거위원회 의장 빅 파지오 하원의원(캘리포니아)은 "의원들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서 "국민들은 관련 의원들이 의외로 많은데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워싱턴=정해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