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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개설 후 '항전' 아이콘 돼

"키이우(키예프)에 살았던 폴리나는 부모님과 함께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열네살 아르세나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아이도 머리에 포탄(파편)을 맞았습니다. 러시아가 민간인을 상대로 한 전쟁이 아니라고 거짓말한다면 (저는) 이 숨진 아이들의 이름을 먼저 외치겠습니다."

지난 8일(현지 시각) 러시아의 침략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44·사진)가 자신의 텔레그램에 '나는 증언한다'라는 제목의 공개 서한을 띄웠다. 연일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호소문이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궁 홈페이지에도 공개했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는 독일어·우크라이나어·영어로 올렸다. 젤렌스카는 이 글에서 "러시아 국영 매체들이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묘사하지만, 이건 우크라이나인 대량 학살"이라고 비판하며 "가장 끔찍한 것은 피해 아이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상황이 일부에겐 그저 전쟁의 결과겠지만, 우크라이나인들에겐 끔찍한 현실"이라며 "피란처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처음 본 건 지하의 콘크리트 벽이고, 첫 숨은 지하의 아린 공기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그들의 삶에서 평화를 모르고 있다"고 했다. 이 글에는 순식간에 댓글이 3000여 개나 달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젤렌스카가 '또 다른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다. 남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4) 대통령이 대러시아 항전을 이끄는 최고 사령관이라면, 젤렌스카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러시아 침략의 부당함과 전쟁 중단의 메시지를 세계에 퍼뜨리는 '비폭력 전쟁'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개전 초기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군의 제1 목표는 나다, 그리고 제2 목표는 우리 가족"이라고 했다. 러시아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암살부대를 파견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젤렌스카는 남편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다만 젤렌스카와 17살 난 딸, 9살 난 아들이 어디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젤렌스카가 이달 초 개설한 텔레그램 채널은 팔로어가 8만5000명이 넘었고, 인스타그램은 전쟁 후 팔로어가 계속 늘어 250여 만명이 됐다.

젤렌스카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동갑내기로 17살 때 만났다. 키이우 국립경제대학에서 젤렌스카는 건축학을, 젤렌스키는 법학을 전공했다. 19살 때 젤렌스키가 '크바르탈95'라는 제작사를 만들자 시나리오 작가로 합류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을 '국민 코미디언' 반열에 올려놓은 드라마 '국민의 종' 작가이기도 했다. 훗날 인터뷰에서 "남편은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지만 나는 그림자가 편했다"고 했다.

그는 남편의 출마를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2019년 보그 인터뷰에선 "온라인에서 보고 나서야 남편 출마 사실을 알았다. 왜 말 안 했냐고 물으니 까먹었다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삶의 방향이 바뀌는 고된 일인 걸 알았기 때문에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고 했다.

2019년 퍼스트레이디가 된 뒤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세계 각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우크라이나 디자이너 옷을 일부러 입을 정도로 자국 문화 홍보에 앞장섰다.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편안한 후드 차림으로 남편과 함께하는 영상, 아이들과 정원에서 얼굴에 페인트칠을 하고 찍은 가족사진 등 소박한 일상을 공개하면서 인간미 있는 퍼스트레이디로 각인됐다.

국내에서는 특히 아동과 여성 권익 향상에 힘을 쏟았다. 학교 급식 품질 강화 캠페인에 앞장서 급식 메뉴가 160개까지 늘어나는 데 기여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성가족성당을 비롯해 미국, 아제르바이잔, 호주, 이탈리아, 터키 등의 박물관과 명승지에 우크라이나 언어 안내 시스템이 도입되도록 했다.

젤렌스카가 전쟁 참상을 알리기 위해 올린 온라인 게시글에도 아이와 여성들이 등장하는 사진이 많다. 버스에 탄 아이들 사진을 올리고 "어린 암 환자들이 병원 지하실에 숨어 있다가 안전한 곳을 찾아 폴란드 국경으로 가고 있다"고 썼다. 우크라이나 영공을 비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남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그것이 러시아군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는 호소문도 올렸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전격 침공했을 때는 "나는 침착하고 자신 있게 행동할 것이다. 나는 아이들과 남편 옆에 있을 것이고, 당신들 옆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8일 쓴 공개 서한은 "우리나라를 향한 우리의 단합 때문에 우리가 이길 것이다. 우크라이나인에게 영광을"이라는 메시지로 끝난다. 기고자 : 최아리 기자 김동현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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