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급성'은 외상과 동반되는 통증, '만성'은 통증 그 자체가 질병

마치 타잔처럼 뉴욕 빌딩 숲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스파이더맨에게도 남모를 고통이 있었다. 바로 허리통증(요통)이다.

영화 '스파이더맨2' 주인공은 손목에서 거미줄을 쏘며 "I'm back!(나 돌아왔어!)"이라고 외친 후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린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거미줄이 발사되지 않아 땅에 떨어지자 "Oh, my back(아이고 내 허리야)"이라고 비명을 지른다. 이 대사는 '스파이더맨1' 촬영 후 다른 영화에서 허리를 다친 스파이더맨역(役) 토비 맥과이어의 실제 고통이 담긴 외침이라고 한다. 1편의 역대급 흥행 성공으로 토비 맥과이어는 스타덤에 올랐고, 2편에도 연속 등장할 꿈에 부풀어있었다. 하지만 제작사는 액션신이 많은 스파이더맨 특성상 허리 아픈 토비 맥과이어 대신에 이미 다른 배우를 내정한 상태였다. 토비 맥과이어는 이에 굴하지 않고 감독의 러브콜을 다시 받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건강한 허리 만들기에 나선다. 그 처음과 끝이 허리에 대한 검사였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허리 검사는 어떨 때 필요한 것일까? 일반적으로 위험 징후가 나타나 신속하게 검사실로 옮겨야 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마비나 감각 저하가 점점 심해진다. ▲갑작스럽게 아프면서 기침할 때 허리가 울리고, 척추를 누르면 아프다. ▲당뇨·골다공증·암 등의 기저질환이 있으면서 허리가 아프다. ▲허리 통증과 더불어 열이 난다. ▲교통사고 등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추락한 스파이더맨이 아닌 배우 토비 맥과이어의 문제는 만성적인 허리통증이다. 통증과 만성통증은 전혀 다른 증상이다. 일반적인 통증(혹은 급성통증)은 다치고, 부러지고, 찢어져 갑자기 신경이나 관절이 손상된 것이다. 이때 다친 부위와 정도에 따라 염좌·열상·좌상·탈골 등으로 병명(病名)이 붙고 통증은 이러한 병명에 동반되는 하나의 증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만성통증은 그 통증 자체가 질병이다. 따라서 외상(外傷)으로 인한 통증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스파이더맨이 높은 곳에서 떨어져 허리가 아픈 것은 염좌에 의한 통증이고, 토비 맥과이어가 수년 동안 허리통증에 시달렸던 것은 그 자체가 질병이라는 의미이다.

통증이 반복되면 아픈 부위부터 머리끝에 이르기까지 연결된 신경회로가 크게 두 가지로 변한다. 첫째는 같은 자극에도 더 아플 뿐 아니라 누르거나 스치기만 해도 통증(기계적 자극에 의해 느껴지는 통증)이 발생한다. 둘째는 뇌에서 내려가 지금 아픈 곳을 조절하는 하향성(下向性) 통증 억제 시스템이 망가진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야 만성통증이라 부를 수 있다.

만성통증은 하향성 통증 억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증상이 오래가고 웬만한 약으로는 잘 조절되지 않는다. 또한 눌렀을 때 근육이나 피부가 단단하고, 통증 중심부를 바늘로 콕 찍듯이 찾아낼 수 없다면 급성보다는 만성통증일 가능성이 높다.

더러 만성통증을 견디다 못해 수술대에 오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수술은 당장 증상을 완화해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통증이 더 악화될 위험성이 크다. 스테로이드 같은 뼈 주사도 마찬가지이다. 급성통증에는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퇴화는 더 심해지는 부작용이 뒤따른다. 만성통증 치료의 핵심은 망가진 신경회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바꿔주는 것이다. 아울러 아픈 부위의 병변도 같이 회복시켜야 한다. 만성통증이 심할 경우 완치는 어렵지만, 충분히 강도는 낮출 수 있다. 그러므로 신경회로가 변해버린 만성통증 환자에게는 FIMS(투시영상하 미세 유착 박리술 및 신경 자극술) 요법 등 몸이 알아서 병변을 회복하도록 돕는 비수술적 치료가 좋다.

허리뿐만 아니라 머리·어깨·팔·손·고관절·무릎·발 등 신체 부위 어디에 통증이 발생하더라도 가장 먼저 할 일은 급성인지 만성인지 구분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디스크나 관절의 퇴화 등 추가적인 요소가 더해질 수 있지만 만성통증은 하나의 질병이지 일시적 증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급성과 만성통증은 접근 방식과 치료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스파이더맨이 뉴욕 시내를 향해 호기롭게 외친 "I'm back!"과 땅에 떨어진 후 "Oh, my back"이라는 비명이 오버랩 되며 주인공 토비 맥과이어가 그동안 시달렸을 허리통증의 무게를 실감해 본다.

[그래픽] 통증 기고자 : 안강 안강병원장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2149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