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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된 구찌家 살인사건… 레이디 가가가 살렸다

당당하고 매력적인 여인 파트리치아(레이디 가가)는 파티장에서 마주친 마우리치오 구찌(애덤 드라이버)에게 반한다. 마우리치오는 그녀를 '엘리자베스 테일러'라 부르고 파트리치아는 "자정이 되기 전에 귀가해야 한다"는 그를 '개구리 왕자'라 놀린다. 우연을 가장해 다시 만난 날, 파트리치아는 마우리치오의 스쿠터 앞유리에 빨간 립스틱으로 전화번호를 남긴다. 비극의 입구다.

12일 개봉하는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House of Gucci)'는 화려한 명품 뒤에 숨겨진 욕망과 상처, 배신과 살인에 대한 이야기다. 스크린에서 격정이 흘러넘친다. 파트리치아는 구찌와 처음부터 사랑에 빠졌고 손에 넣을수록 더 가지려 했고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았다. 1995년 일어난 청부살해 사건을 골격으로 삼은 이 영화를 보고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가 쓴 문장이 떠올랐다. "무서운 깊이 없이 아름다운 표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명품 브랜드 구찌가 패밀리 비즈니스에서 전문 경영인 체제로 넘어가는 시기에 피로 얼룩진 가족사를 드라마틱하게 담았다. 이혼당한 후 적개심을 키운 파트리치아는 '마우리치오를 소유하기 위해 마우리치오를 살해했다'고 이 영화는 주장한다. 재판 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화려한 스타일과 도도한 태도 때문에 그녀에겐 '블랙 위도'라는 별명이 붙었다. 구찌 가문은 1990년대부터 구찌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 이 영화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했지만 법적으로 막지는 않았다.

치명적인 매력이란 이런 것이다. 레이디 가가는 '구찌를 사랑하고 구찌를 뒤흔들고 구찌를 죽인' 파트리치아를 그렇게 연기했다. 이 스릴러의 엔진이자 회전축이다. 영세한 트럭 운송업자의 딸 파트리치아는 클림트 그림을 피카소 그림이라고 할 만큼 교양이 부족하다. 하지만 구찌를 향한 욕망은 항공모함이다. 셰익스피어 비극에서 남편을 충동질해 덩컨왕을 죽이고 권력을 장악하는 레이디 맥베스와 닮아 있으면서 더 현대적이다.

명품 브랜드에 얽힌 영화라서일까. 톱스타를 수집한 듯 출연진이 눈부시다. 레이디 가가, 애덤 드라이버, 알 파치노, 재러드 레토, 제러미 아이언스, 셀마 헤이엑.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자만 4명이다. 영화는 밀도가 아쉽고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체중을 불리고 6개월간 억양을 연습하며 배역에 다가간 레이디 가가에게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줘도 아깝지 않다. 거장들의 러브콜이 쏟아지는 애덤 드라이버는 감정 진폭을 견뎌냈다. 구찌 가문의 괴짜 파올로를 연기한 재러드 레토의 변신술, 구찌의 야심가 알도를 맡은 알 파치노의 존재감은 비극이 비극답기 위해 필요한 웃음을 양념처럼 보탰다.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기보다 감정적 상처의 기록일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은 "페라리를 몰고 가는 사람을 보거든 '저 사람 참 탐욕스럽군'이라 여기지 말고 '상처받기 쉽고 애정이 결핍된 사람이군'이라 생각하라"고 했다.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는 속물적 세상이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라는 뜻이다.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파트리치아는 그 무시를 참을 수 없어 자멸한다.

이 영화는 '에일리언' '글래디에이터' '블랙 호크 다운' '마션' 등에서 압도적 비주얼과 긴장감을 보여준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했다. 사라 게이 포든이 쓴 논픽션을 영화로 옮기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저택부터 패션까지 구찌 스타일이 스크린에 흥건하다. 러닝타임 158분. 시간을 감당할 자신이 있고 구찌의 은밀한 역사도 궁금한 관객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구찌 가문은

구찌 창립자인 구초 구찌는 1923년 마구(馬具)를 만들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죽 제품 가게를 열었다. 네 아들 알도, 우고, 바스코, 로돌포가 로마나 밀라노에서 가업을 확장했다. 구찌는 1953년 알도와 로돌포가 미국 뉴욕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애용했다는 '재키 백'이 히트하며 명품의 상징이 됐다. 살해당한 마우리치오는 로돌포의 아들이다. 기고자 : 박돈규 기자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2007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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