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삼성전자·TSMC 잡겠다더니… 3년간 최소 6개 기업 실패

삼성전자와 대만 TSMC를 따라잡을 첨단 반도체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계획이 엄청난 예산만 낭비한 채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 첨단 반도체 기술의 장벽이 얼마나 높은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거창한 계획만 앞세운 것이 패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 단위 정부 자금을 지원받은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단 한 개의 반도체도 시장에 내놓지 못한 채 속속 문을 닫고 있다.

◇잇따라 좌초된 반도체 프로젝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 시각) "중국 관영 매체 보도, 지방 정부 문건 등을 분석한 결과 지난 3년간 중국에서 최소 6개의 대규모 반도체 제조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면서 "이들 프로젝트에 최소 23억달러(약 2조7600억원)가 투입됐다"고 했다. 이 자금은 대부분 지방정부들이 지원했다. WSJ는 중국의 반도체 육성 실패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우한훙신반도체제조(HSMC)와 취안신집적회로(QXIC)를 꼽았다.

두 회사는 당초 14나노(1나노m=10억분의 1m)급 반도체로 시장에 진입해 몇 년 내에 7나노급 반도체를 양산해 삼성전자·TSMC와 경쟁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HSMC는 TSMC의 최고 경영자였던 장상이를 최고경영자로 영입했고, QXIC는 높은 연봉과 인센티브를 내세워 TSMC를 비롯한 대만 기업들에서 기술진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반도체 생산에 실패했다. WSJ는 "기술자들은 반도체에 대한 기술적 지식이 있었지만, 회사는 이런 기술을 통합할 능력이 없었다"고 했다. 반도체는 소재 조달부터 화학약품 처리, 회로 식각, 후공정에 이르는 수천 가지 공정이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산업이다. 하지만 중국 반도체 회사들은 일부 기술진의 지식만 믿고 무모한 도전을 했다는 것이다.

반도체 육성을 주도한 정부 관료들이 산업 자체를 과소평가한 것도 문제였다. 관료들은 막대한 자금을 단시일에 지원하면 반도체가 쉽게 개발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삼성전자와 TSMC의 경험과 지식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결국 HSMC는 자금난을 겪다가 지난해 해체됐고, QXIC도 운영이 중단된 상태이다. 허페이룽쉰 등 다른 반도체 기업들도 수백억~수천억원씩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좌초됐다.

중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은 첨단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반도체 자급이 필수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무역 갈등으로 언제 반도체 공급 자체가 끊길지 모른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7%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는 2014년부터 이른바 '빅 펀드'로 불리는 지원금을 반도체 관련 산업 육성에 쏟아붓고 있는데 지금까지 투입된 금액만 520억달러(약 62조6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다급한 정부를 이용하려는 업체들까지 난립하고 있다. 요식업, 시멘트 제조사 등 수만 개 기업이 반도체 관련 회사인 것처럼 등록하고 지원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멈추지 않는 반도체 산업 육성책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황당한 일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중국 정부와 테크 기업들은 반도체 자립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해 9월 향후 10년간 반도체 기업의 법인세 25%를 감면해주는 정책을 도입했고,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는 상하이에 10조원 이상을 투입해 반도체 공장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제재 대상이 된 화웨이는 저가 스마트폰 브랜드 같은 비핵심 사업을 정리한 자금으로 반도체 자체 개발과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바이트댄스, 샤오미 등 중국 빅테크 기업들도 반도체 개발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조대곤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모든 산업에 반도체가 필수적인 상황이고, 세계 각국이 반도체를 전략무기화하고 있다"면서 "중국 입장에서는 아무리 많은 자금을 투입하더라도 반도체 자립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 반도체 제조에 실패한 中 반도체 기업 6곳

[그레픽] 세계 반도체 기업 순위 기고자 : 박건형 기자 이벌찬 기자
본문자수 : 2079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