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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처럼 전시실에도 주연과 조연이 있다. 한 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는 한편, 주의를 기울여야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백자실의 사금파리가 그렇다. 모두 가마터에서 발견된 것들로 깨지거나 주저앉은 것, 또는 도공(陶工)의 성에 차지 못해 불량품 판정을 받은 것들이다. 제대로 완성되었더라면 여느 주연 못지않았을 것이다.

어느 날 내 마음에 들어온 접시 파편이 그랬다. 출장 나온 화공(畫工)이 문자향(文字香)을 펼쳤는지, 어느 고관대작이 가마까지 찾아와 직접 썼는지 모르겠지만 백자의 하얀 바탕에 청화 안료로 정연하게 쓴 푸른 글씨가 눈에 쏙 들어왔다. 접시의 가장자리가 모두 깨졌지만 문장 전체는 고스란히 남았다.

"푸른 실로 술병을 매어주었건만(玉壺繫靑絲·옥호계청사) 술 사서 오는데 어찌 이리 늦는가(沽酒來何遲·고주래하지). 산꽃이 나를 보고 웃으니(山花向我笑·산화향아소) 술잔 기울이기 딱 좋은 때인 걸(正好㘅盃時·정호함배시)."

'한 잔을 부르는 멋진 글이군'하며 시선을 돌리는데 곁에 있는 파편 속 문자도 몇 글자 남지 않고 필체도 달랐지만 분명 같은 시였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좋아했던 시가 틀림없구나 싶어 찾아보니 역시나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작품이었다. 이 시는 뒤로도 네 구가 더 있었다.

"동창 아래서 저녁 술자리 여니(晚酌東窗下·만작동창하) 어지러이 날던 꾀꼬리도 다시 이곳에(流鶯復在茲유앵부재자), 봄바람 취객과 더불기(春風與醉客·춘풍여취객) 오늘이 제격이라(今日乃相宜·금일내상의)."

이 시구가 쓰여있는 접시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본디 두 개의 접시가 한 쌍을 이루었을 터, 오롯이 전해졌다면 봄을 대표하는 전시품이 됐을 것이다. 요즘 나라 안팎으로 중요한 일이 많아서인지 '봄은 왔건만 봄 같지 않다.' 시인은 오늘이 제격이라는데 언제쯤이면 접시의 시구처럼 마음껏 봄을 누릴 수 있을까. 아! 이 시의 제목은 '기다리는 술은 오지 않고(待酒不至·대주부지)'다. 기고자 :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991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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