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러시아와 협상의 문 열어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가 요구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포기'에 대한 여지를 내비치며 협상의 문을 열어 놨다. 하지만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국민의 항전 의지를 북돋웠던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연설을 인용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 시각) 미국 ABC 방송과 화상 인터뷰에서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가입 문제에 대해 냉정해졌다(cooled down). 나토는 러시아와 대립과 충돌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는 "지금 할 일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라며 "나는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러시아가 2014년 강제 합병한 크림반도와 현재 점령 중인 돈바스 지역에 대한 타협의 여지도 남겼다. 그는 "일시 점령 중인 영토(크림 반도)와 러시아 외에 누구도 승인하지 않은 (돈바스 지역의) 미승인 공화국 문제에 대해 타협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이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싶은가다"라고 했다.

러시아는 크림 반도의 러시아 귀속 인정, 돈바스 지역 친러 분리주의자들이 세운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 승인, 나토 가입 포기와 중립국화 등을 우크라이나에 휴전 조건으로 내걸었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크림반도 주권 상실 이후 러시아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받자, 2019년 헌법을 개정해 유럽연합(EU)과 나토 가입을 전략적 목표로 명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도 대러 항전 의지를 거두지 않았다. 8일 영국 하원에서 진행된 화상 연설에선 "바다에서, 하늘에서, 땅에서, 해안에서, 거리에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2차 대전 중인 1940년 6월 4일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서 독일군에 포위된 연합군 병력을 영국으로 탈출시킨 뒤 처칠 총리가 하원에서 했던 연설을 인용한 것이다. 젤렌스키의 연설에 영국 하원 의원들은 30초간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전쟁 13일째인 8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합의한 북동부 수미 지역 '인도적 통로'로 민간인 5000여 명이 대피했다. 하지만 민간인 피해는 이날도 이어졌다. 북동부 체르니히우에선 지뢰 폭발로 사상자 6명이 나왔다. 러시아군에 포위돼 전기와 수도가 며칠째 끊긴 마리우폴에선 6세 여자아이가 탈수 증세로 숨졌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은 개전 이후 민간인 474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난민 숫자가 200만명을 넘었다"며 "유럽에서 이처럼 빠른 난민 증가 속도는 2차 대전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기고자 : 서유근 기자
본문자수 : 1337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