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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오스트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주식시장이 잇따라 무너졌다. 공포는 미국으로 옮아붙어 뉴욕에서 뱅크런이 벌어졌다. 19세기 중반의 투자 과열이 갑자기 꺼졌다. 이때 시작된 '장기 불황(Long Depression)'이라는 이름의 침체는 23년이나 지속됐다.

20세기 들어서는 경제위기 회복 속도가 빨라졌다. 1929년 대공황은 10년 만에 마무리됐다.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로는 치료가 더 신속해졌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과감한 금리 처방으로 '해결사' 역할을 해낸 덕분이다. 20세기 초입엔 전 세계 중앙은행이 18개였지만 21세기는 173개로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 역할은 더 확대됐다. 양적완화라는 초유의 돈 풀기로 준(準)재정정책까지 집행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주식 투자 인구가 크게 늘어나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을 날카롭게 지켜보는 이가 많아졌다. 특히, 차기 정부 출범과 맞물려 한은이 위기 관리에 각별히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1900조원에 가까운 가계부채 탓에 일상을 금리가 지배하고 있다. 올해 미국은 코로나 사태로 풀어놓은 유동 자금을 공격적인 속도로 빨아들일 태세다. 러시아발 '전쟁 리스크' 관리도 필요하다.

따라서 8년 임기를 마치고 이달 말 퇴임하는 이주열 한은 총재의 뒤를 누가 잇느냐는 건 숙고를 거듭해야 할 일이다. 차기 한은 총재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하더라도 차기 대통령 당선자 의중도 반영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감스럽게도 청와대·정치권·한은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정략적인 계산에 치우쳐 있다. 차기 집권 세력과의 친소(親疏) 관계가 우선이라고들 한다. 이 총재가 오래 재임했으니 그와 지연(地緣)·학연(學緣)이 겹치는 인사는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 총재가 내부 출신이니 후임은 외부에서 와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이에 맞서 '낙하산 총재'는 곤란하다는 반론도 있다. 금융통화위원회를 이끄는 리더로서 자질과 거리가 먼 논의들만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중앙은행의 역할이 커진 만큼 까딱하면 우리 삶을 도탄에 빠뜨릴 위험도 크다. 일본이 긴 불황의 터널에 갇혔던 이유 중 하나는 냉탕과 온탕을 급하게 오간 일본은행의 헛발질이었다. 코로나 사태도 중앙은행들이 엄청난 규모의 현금을 뿌려 급히 봉합했지만, 반대급부로 인플레이션 파도가 몰려와 세계가 허우적대고 있다.

현대사회는 중앙은행이 국내외 흐름을 정확하게 읽는 통화정책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쉽게 요동치게 된다. 금리의 칼자루를 쥘 사람을 뽑을 때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선거 공신에게 자리를 챙겨주는 식의 접근은 금물이다. 선진국일수록 중앙은행 수장을 철저히 실력 중심으로 인선하고 독립된 의사 결정을 보장한다. 대한민국도 그런 면모를 보여야 하는 나라가 됐다. 기고자 : 손진석 경제부 차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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