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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개혁파와 보수파간에 요즘 심상치 않은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보-혁이 팽팽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개혁파가 대세를 장악한 가운데,보수파가 막바지 반격을 숨가쁘게 펼치고 있는 형세라 할 수 있다.

이 싸움의 결판은 빠르면 오는 20일 개막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그렇지 않으면 오는 가을 열릴 제14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14전대회)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전인대에서는 행정부인 국무원에 대한 인사가,5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당 전국대표대회에서는 당에 대한 인사가 최종 확정되기 때문이다.

개혁파건 보수파건 최근의 세계정세와 지난 89년의 천안문사태 때문에 가급적 대립을 회피해왔다. 천안문사태 이후 마치 살얼음을 밟는 형상이던 국내 정치정세와,이후 불어닥친 사회주의권의 몰락이라는 세계 정세속에서 양파의 대립은 곧 공동몰락을 가져온다는 점을 서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불꽃을 튀기게 된 이번 싸움은 개혁파가 먼저 걸었다는 설도 있고,보수파가 먼저 걸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양파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기미가 감지된 것은 지난달 23일이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돌연 대외개방과 자본주의의 이용 이라는 기고문을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싣고나왔던 것이다. 인민일보의 이런 행동은 89년 천안문사태 이후 이 신문을 골수보수파인 고적 사장이 장악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다음날도 인민일보 1면에는 개혁에 대한 용기를 더 크게 갖자 는 제목의 사설이 또 대문짝만하게 실린 것이었다.

보수파들을 더욱 기가차게 만든 것은 대외개방과 자본주의의 이용 의 기고문 내용이었다. 북경의 인민대학 경제학 교수로 알려지고 있는 필자 방생은 이 글을 통해 이런 주장을 했다. "중국과 같이 오랫동안 봉건주의 통치를 받아 경제가 낙후한 국가는 자본주의를 배척할 것이 아니라,정확히 알고 이용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쓸데없이 두려워만 할 필요는 없다. "

다음에 터져나온 것이 이른바 남순강화 문제다. 남순강화 란 등소평동지가 남부지방을 순회하면서 한 말 이라는 뜻이다. 남순강화는 지난달 28일에 열린 중국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에 강택민 당총서기가 들고나왔다. 강 총서기는 이 자리에서 등소평이 했다는 "개혁개방의 속도를 더 빨리 해야한다. 개혁개방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물러나라"는 말을 전달했다. 강 총서기는 또 이 남순강화를 7천자로 정리, 당중앙문건 으로 지정되도록 조치했다. 당중앙문건 으로 지정되면 2~3주내에 4천8백만 당원들에게 회람되는 것이 보통이다.

골수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는 인민일보에 뜻밖의 글이 대문짝만하게 실린 일이나,천안문사태 얼마후 당중앙군사위 주석직까지 강택민에게 물려주고 은퇴를 공식선언한 등소평의 말이 2년만에 또다시 당내에 회람되는 일이 벌어지자,홍콩-일본과 서방의 중국 관찰자들은 개혁파가 최근 구 소련의 몰락 등 국제정세를 업고 보수파를 완전 제압했다 는 판단을 자연스럽게 했다.

그러나 지난 4일부터는 보수파의 반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날 저녁 7시 전국 동시 뉴스시간인 신문련파 에는 한동안 잠잠하던 뇌봉 이 또다시 등장했다. 뇌봉 이란 모택동시대에 사고사한 인민해방군 모범용사로,모택동시대에 인민들에게 봉사정신을 강요하던 도구로 이용되던 정치선전 조작물이었다.

보수파들은 천안문사태 직후 전국적으로 뇌봉 바람을 일으켰으며,이번에도 개혁파의 압도적인 공세에 뇌봉을 동원해서 모택동의 영구혁명론 을 상기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파들은 또 개혁파에 탈취당한 듯 판단되던 인민일보에도 5일 뇌봉을 배우자 는 사설을 게재하게 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적어도 인민일보를 둘러싸고는 혼전이 벌어지고 있는 양상을 띠고 있다. 보수파들은 남순강화 회람배포도 곳곳에서 차단을 기도하고 있다고 들린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각 지방언론들의 보도방향이나,7일 전해진 보수파의 가경지 문화부장이 등소평의 비난을 받고 사표를 제출했다는 소식 등은 아무래도 이번 싸움에서 보수파가 역부족이 아닌가 하는 진단을 가능하게 해준다. <박승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