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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우크라 침공에 유럽정세 변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외교적으로 중립적 태도를 이어오던 유럽 각국이 친(親)서방 노선으로 돌아서면서 유럽이 전례 없이 하나로 뭉치고 있다. 옛 소련의 일부였던 조지아와 몰도바가 지난 3일(현지 시각) 유럽연합(EU) 가입을 신청했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인근국인 두 나라가 러시아의 '다음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자 서둘러 EU 가입에 나선 것이다. 오랫동안 군사적 비동맹주의 정책을 유지해온 핀란드와 스웨덴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국제법상 중립국 스위스도 지난달 말 푸틴 대통령 등 러시아 주요 인사들의 역내 자산 동결, 러시아 항공기 운항 금지 등 대러 제재에 동참하기로 했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마이아 산두 몰도바 대통령과 이라클리 가리바슈빌리 조지아 총리는 이날 EU 가입 신청서를 공식적으로 제출했다. 산두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몰도바는 분명히 유럽으로 향하고 있으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이라클리 코바키드제 조지아 집권 여당 '조지아의 꿈' 의장은 "EU와 통합은 우리가 가난을 극복하고 안보를 강화하며 (외부 세력의) 점령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라고 밝혔다. 조지아는 오는 2024년부터 EU 가입을 추진하려 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면서 야당이 EU 가입을 서두를 것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처럼 EU나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친러·친서방 세력이 대립하며 번갈아 집권해온 두 나라에서는 러시아의 다음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몰도바는 러시아의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받는 친러 성향 지역이 러시아군과 연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조지아는 지난 2008년 러시아 침공 당시 4일 만에 항복해 남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을 내준 뼈아픈 역사가 있다. 이 때문에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는 최근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대규모 반전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두 나라가 EU 가입 승인을 얻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가장 최근 EU에 가입한 크로아티아(2013년)는 신청부터 가입까지 10년이 걸렸다. EU 가입국이 되려면 사회·법률·경제개혁 등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토머스 디 월 카네기유럽센터 수석연구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동유럽의 어떤 국가도 자국의 미래를 안심할 수 없게 됐다"면서 "EU는 조지아, 몰도바 등 구소련권 국가의 국권(國權)을 강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냉전 이래 수십 년 동안 중립을 유지해온 핀란드와 스웨덴마저 나토 가입을 고려하게 만들었다. 핀란드 현지 방송 'YLE'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상 처음으로 응답자 과반인 53%가 나토 가입에 찬성했다. 반대 의견은 28%에 그쳤다. 나토 가입 국민투표를 촉구하는 청원에는 일주일 만에 5만명이 서명해 지난 1일 의회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지난 3일 당 지도부와 회담 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이후 핀란드의 외교·안보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는 데 다들 동의했다"면서 "안보 환경이 급격히 변화할 경우 나토 가입에 대한 의견이 바뀔 수 있지만, 결정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또 스웨덴에서도 공영방송 SVT가 유권자 138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나토 가입 지지가 41%, 반대가 35%로 나타났다. 찬성표가 반대표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토 가입 지지자인 칼 빌트 전 스웨덴 총리는 트위터에 "생각할 수 없던 것들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고 썼다. 마티 페수 핀란드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AFP 인터뷰에서 "2008년 조지아 전쟁과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때도 이처럼 급격한 여론 변화가 나타나진 않았다"면서 "예외적이고 중대한 변화"라고 했다.

핀란드와 스웨덴에서 나토 가입 여론이 높아지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두 나라에 "러시아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벨라루스 현지 언론이 지난 3일 보도했다. 두 나라가 나토에 가입해 러시아를 위협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두 나라는 "각국은 스스로 안보 정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며 맞서고 있다. 기고자 :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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