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상장기업 역대 최대규모 횡령

국내 1위 임플란트 제조업체인 오스템임플란트가 1880억원을 횡령한 재무 담당 팀장급 직원 이모(45)씨를 경찰에 고소했다고 3일 공시했다. 상장사 횡령 금액 기준으로 역대 최대다. 공시 직후 시가총액 2조원대로 소액 주주가 2만명에 달하는 오스템임플란트는 코스닥 시장에서 거래가 정지됐다. 횡령 자금 1880억원은 오스템임플란트 자기자본(2047억원)의 92%에 해당한다.

현행 코스닥 상장 규정은 '상당한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가 확인되는 경우'에 상장폐지도 가능하다. 한국거래소는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횡령액이 자기자본의 5%를 넘으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된다. 거래소 관계자는 "비교적 우량한 회사이고 단독 범행이라는 점 등이 참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이씨가 작년 10월 코스닥 반도체 장비업체 동진쎄미켐 주식을 1430억원어치 사들였다가 11~12월 6차례에 걸쳐 매각한 '파주 수퍼개미'와 이름과 나이가 같아 동일인으로 추정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파주 수퍼개미'로 알려진 이씨는 지난해 10월 1일 동진쎄미켐 주식 7.62% (1430억원어치)를 매수했다가 작년 11월 18일부터 6차례에 걸쳐 팔고 작년 12월 30일 기준으로 1.07%를 보유 중이다.

특정 종목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면 의무적으로 지분 공시를 해야 하고 자산 규모도 공개된다. 경찰 관계자는 "1880억원을 횡령한 이씨와 1430억원 주식 투자를 한 이씨를 동일인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도 "동일인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횡령한 돈으로 지분 공시를 해야 할 정도로 대규모 주식 투자를 했다는 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파주 수퍼개미로 알려진 이씨는 동진쎄미켐 투자에서 큰 손실을 입었다. 작년 10월 처음 투자했을 때 평균 취득 단가는 3만6492원이었지만, 매도 평균 단가는 약 3만4000원으로 취득가 대비 7% 정도 낮았다. 주식을 산 지 두세 달 사이에 투자 손실을 확정 짓는 '손절매(損切賣)'를 단행한 것이다. 주식 매각으로 1112억원 정도만 회수해 60억원(4.3%) 손실을 본 상태다. 증권가에서는 이씨가 작년 10월 1000억원대 거액 주식 투자에 나선 이유로 '삼성전자의 동진쎄미켐 인수 추진 뉴스'를 들었는데 이는 가짜 뉴스였다. 주가는 떨어졌고 결국 손실을 보고 매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거래 중지 조치는 오스템임플란트에만 내려졌고 동진쎄미켐 대상으로는 아직 예정돼 있지 않은 상태다. 오스템임플란트는 서울대 치대 출신 최규옥 회장이 1997년 설립한 치과용 임플란트 전문 기업이다. 국내 임플란트 시장 점유율이 50%에 달한다.

동진쎄미켐 관계자는 "주식 1430억원어치를 매수했던 이모씨는 오너 일가와 관련이 있는 특수 관계인도 아니며, 어떤 이유에서 대량으로 주식을 샀고 왜 다시 팔았는지 회사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오스템임플란트에 따르면, 이씨는 회사의 잔액 증명 시스템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기업 자금을 횡령했다. 은행이 회사 자금 담당자에게 매달 잔액 증명서를 보내는데 이씨가 이 서류를 조작해 실제 회사 계좌에 돈이 있는 것처럼 속였다는 것이다. 회사는 "이번 사건은 자금 관리 직원이 단독으로 잔액 증명서를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위조해 회사 공금을 본인의 은행·주식 계좌로 이체하고 횡령한 사건"이라며 "향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최대한 빠른 회수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 1위에 코스닥 시가총액 22위의 회사가 직원 한 명이 2년 치 영업이익에 달하는 거액을 횡령하는데도 두 달 넘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 투자 커뮤니티 등에는 "1000억대 수퍼개미 이름이 인터넷에 떠돌고, 1900억원이라는 거액이 사라졌는데 회사에서 아무도 몰랐다니 황당하다"는 반응들이 나온다.

오스템임플란트는 이씨의 횡령 사실을 작년 12월 31일에야 알았고, 이씨는 전날부터 출근하지 않고 잠적한 상태다. 그는 한 의료 기기 업체에 근무하다가 2018년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에게서 자금을 최대한 회수하더라도 회사로서는 재무적인 손실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삼성증권은 이날 오스템임플란트에 대해 "상장폐지 가능성은 낮지만 자금 회수가 안 될 경우 손실로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며 목표 주가를 종전 16만원에서 14만원으로 내렸다.

[그래픽] 이모씨의 동진쎄미켐 주식 매매 내역 기고자 : 최형석 기자 권순완 기자 유지한 기자
본문자수 : 2276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