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10일부터 방역패스 적용 확대

경기도 김포시에 사는 권모(71)씨는 부정맥 환자다. 부작용 우려 때문에 코로나 백신을 접종받지 못했다. 권씨 아내도 평소 약물 부작용이 심해 백신을 맞지 않은 상태다. 부부는 감염 우려 때문에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자녀들과도 6개월 넘게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방역 패스' 강화 조치로 권씨 부부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권씨는 "한산한 평일 오전 시간대 대형 마트에 가 무인 계산대만 이용했는데 이마저도 금지하는 건 너무 심하다"면서 "(방역 패스가 적용 안 되는) 동네 마트는 규모가 작아 오히려 사람들과 접촉이 더 많다. 탁상행정 아니냐"고 했다.

10일부터 대형 마트·백화점·대형 상점까지 방역 패스가 적용되면서 미접종자들 사이에서 "이젠 마트에서 장도 보지 말란 거냐" "인권침해"라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특히 임신부들의 걱정이 크다. 최근 아이를 가진 직장인 박모(40)씨는 "임신부들은 태아가 잘못될까 봐 먹는 음식 하나도 조심해서 먹고 감기약도 함부로 안 먹는다"며 "불안해서 출산 이후로 접종을 미룬 것뿐인데 이제 혼자 마트도 못 가게 됐다"고 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임신부에 대해서는 방역 패스 적용을 예외로 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와 있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9일 기준 코로나 백신 1차 접종을 마친 임신부는 2087명, 2차 접종까지 마친 임신부는 1175명이다. 작년 9월 현재 전국 임신부(13만9000여 명) 수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임신부 1차 접종률은 1.5%, 2차 접종까지 마친 비율은 0.84%밖에 안 된다. 그간의 접종 추세를 감안하면 지금도 약 98% 내외의 임신부가 방역 패스 적용으로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방역 당국이 "백신이 임신부 본인과 태아에게 위험하지 않다"고 하지만 먹히지 않고 있다.

방역 당국이 "의학적 사유로 백신 접종을 못 받은 경우 의사 소견서를 보여주면 '방역 패스' 업종에 출입할 수 있다"고 알리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의사 소견서를 받을 수 있는 '불가피한 사유'가 너무 한정돼 있다는 지적도 많다. 확진 후 완치된 경우, 항암제 투여로 백신 접종이 연기된 경우, mRNA 백신 구성 물질에 대한 중증 알레르기 발생 이력이 있는 경우 등만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고3 학부모는 "아이가 어릴 때 백신 아나필락시스(전신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어서 도저히 코로나 백신을 맞힐 수가 없었다"며 "병원에 가니 '코로나 백신 외의 다른 백신에 대한 이상 반응은 인정해주지 못한다'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조두형 영남대 의대 교수 등 의료계 인사가 포함된 시민 1023명은 최근 방역 패스의 행정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지난달 시민 450여 명도 정부의 방역 패스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정부는 방역 패스 제도는 "미접종자의 코로나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미접종자는 18세 이상 성인의 6.7%에 불과하지만 현재 확진자의 약 30%, 사망자의 53%를 차지하고 있다. 중증 환자도 절반가량이 백신 미접종자다.

전문가들 의견은 다소 엇갈린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아직 우리나라가 유럽이나 미국처럼 아주 대규모로 확진자가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백신 미접종 상태인 사람들이 코로나에 노출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임신부도 큰 문제가 없다면 30주 차 이후에는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했다. 반면 천은미 이대의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백신 접종은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며 "동거 가족들이 외부 활동을 최소화하되, 약간이라도 증상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자가 검사 키트를 사용하거나 PCR 검사를 해서 임신부에게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방역 패스의 실효성 논란도 일고 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유럽 국가들도 록다운(봉쇄)에 들어갈 때 마트 같은 생활필수시설은 열어놓았다"며 "미접종자가 지금까지도 백신을 맞지 않는 다양한 이유를 살피고 불안감을 해소해주는 정책을 펴도록 해야지, 이런 식의 압박 위주 정책은 접종률을 크게 높이기도 어렵고 자칫 백신 접종자들에게 '안심하고 돌아다녀도 된다'는 잘못된 사인만 줘 방역에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기고자 : 박세미 기자 곽래건 기자
본문자수 : 2161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