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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지긋지긋한 편가르기＂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3·1절 기념사에서 "첫 민주 정부는 김대중 정부"라고 말했다. 첫 직선제를 통해 선출한 노태우 전 대통령, 첫 문민정부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 정부를 민주 정부로 인정하지 않은 발언이었다. 야당은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뿌리를 두고 있는 문민정부를 애써 무시하려는 것"이라며 "지긋지긋한 편 가르기로 국민 분열을 야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1일 서울 서대문구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우리 문화예술을 발전시킨 힘은 단연코 민주주의"라면서 "첫 민주 정부였던 김대중 정부는 자신감을 가지고 일본 문화를 개방했다"고 했다. BTS 등 K팝,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의 성공 배경을 얘기하면서 나온 말이었다.

문 대통령은 "우리 문화예술은 다양함 속에서 힘을 키웠고, 오히려 일본 문화를 압도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게 됐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것'은 역대 민주 정부가 세운 확고한 원칙"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민주'란 단어를 20번 가까이 썼다.

청와대는 "첫 민주 정부는 김대중 정부"라는 발언 배경에 대해 공식 설명은 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1987년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 사회였고, 김대중 정부는 평화적 정권 교체를 통해 이룬 첫 민주 정부였다"며 "우리가 자신 있게 민주주의를 얘기할 수 있었던 때라는 표현"이라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1기 민주당 계열 정부를 말하는 것 아니었겠냐"고 했다. 여당 내에서는 "대통령이 왜 굳이 저런 표현을 했는지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국민의힘은 "역사 왜곡"이라며 반발했다. 노태우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무총리 등을 지낸 노재봉 전 총리는 본지 통화에서 "말이 안 되는 소리고 완전한 역사 왜곡이라는 말밖에 할 얘기가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황규환 대변인은 논평에서 "3·1절에 대통령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며 "각종 개혁을 통해 자유와 민주주의의 기치를 바로 세운 문민정부를 의도적으로 패싱한 저의가 무엇인가"라고 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까지 '통합'을 강조하면서도 '내편, 네편'을 갈라치는 편 가르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영삼 정부 청와대에서 사회정책비서관을 지낸 황윤원 중원대 총장은 1일 통화에서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보면 87년 민주화 이후 헌법이 만들어진 다음 처음 들어선 정부는 노태우 정부고, 국민감정은 문민정부 때부터를 민주 정부로 본다"고 했다. 황 총장은 문 대통령 발언에 대해 "대한민국 대통령이 특정 이념을 지향하는 정파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정책 자문을 응했고 문민 정부 청와대에서 교육과 노동개혁 이슈를 다룬 김태기 전 단국대 교수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높이 평가하더니 선거철이 되니까 말을 바꿨다"며 "너무 오만하고 겸허함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김 전 교수는 "역사를 자기 멋대로 평가하는데 '첫 민주 정부가 김대중 정부'라는 주장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발언이고 결국 자기에게 되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이 자기가 생각하는 자의적 기준에 따른 의견을 공식 발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야당에선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내 계층, 세대, 이념 간 갈라치기를 통해 '내편'을 확실하게 챙기면서 45% 지지율을 지켜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여야 대통령 후보가 대선 직전 오차 범위 내 초접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나온 대통령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선거 개입 의도"라고도 보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도 최근 유세장에서 "문재인 정부가 갈라치기로 대한민국을 조각조각 내놨다"고 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노영민 전 의원은 이날 이재명 후보 지원 유세에서 "문재인 정부의 최고 업적은 이재명 정부의 탄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우리는 머리는 빌리면 된다고 한 대통령을 모신 적이 있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 잘 아실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로 결말나지 않았나"라고 했다. 이어 "머리를 빌려야 하는 자리가 있고 없는 자리가 있다. 대통령은 머리를 빌려서는 안 되는 막중한 자리"라며 이 후보를 뽑아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3·1절 기념사에서 또다시 '강한 나라'를 강조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위기 속에 국제질서가 요동치고 힘으로 패권을 차지하려는 자국 중심주의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며 "신냉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3·1 독립운동의 교훈은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주도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이제 누구도 얕볼 수 없는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세계가 공인하는 선진국이 되었다"고 말했다. 2019년 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 대통령은 한국을 겨냥한 일본의 수출 규제에 맞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위안부, 강제 징용 등 일본과의 문제에 대해선 어떤 해법도 제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가까운 이웃인 한국과 일본이 '한때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를 딛고 미래를 향해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 일본은 역사를 직시하고, 역사 앞에서 겸허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항상 대화의 문을 열어둘 것"이라고 했다. 최악의 한·일 관계는 결국 다음 정부로 그대로 넘어가게 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도 북한에는 대화를 끊임없이 제안했다. 올해 들어 북한이 수차례 동해상으로 쏜 미사일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우리가 의지를 잃지 않는다면 대화와 외교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기고자 : 김아진 기자 김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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