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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아이들은 믿었다. 우주 친구들이 등장해서 노래하고 춤추는 순간 엄청난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은하계의 평화를 위해 공중도덕을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하자마자 아이들은 격렬하게 손을 들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빨간불은 건너면 안 돼요!" "지갑을 주우면 주인에게 돌려줘요!" "화장실에 다녀오면 꼭 손을 깨끗이 씻어요!" 너무나도 모범적인 지구인들이었다. 이런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면 지구는 대대손손 번영을 누릴 것 같았다. 기분 좋게 작별 인사를 하고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씨익 웃으며 다가왔다. "고생하셨어요. 하나만 알려드릴까요? 우주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든요?" 혀를 내밀며 후다닥 달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소리쳤다. "나도 알거든! 연기하기 힘들거든!"
그럼 그렇지. 요즘 아이들이 믿을 리가 있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우주복을 벗으려는데 담임 선생님이 한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오셨다. 아이는 울고 있었다. "죄송해요. 우주 친구들이 떠난다니까 마지막으로 인사하면 안 되냐고 계속 우네요." 이럴 수가, 이 친구는 정말로 믿고 있었다. 그나마 우주복을 절반만 벗어서 다행이었다. "걱정 마! 지금 우주 친구들이 우주선 시동 거는 중이거든? 아직 안 날아갔어!" (시동이라니, 우주선이 시동이라니.) 그렇게 배우들이 다시 나왔고, 그 아이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이는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씨익 웃으며 교실 문을 나섰다.
놀라운 교훈이었다. '아이들' 한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어린이가 수십 명 있는 것이었다. 어떤 아이는 믿었고, 어떤 아이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믿음에 상관없이 모두가 즐겁게 공연을 보았다. 그것은 가장 훌륭한 공중도덕이었다. 어쩌면 어른의 시선에서 아이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려는 마음이 있진 않았을까. 아이들은 그 마음을 알면서도 우리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공연을 보는' 연기를 해준 건 아닐까. 우리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한 수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좋아져서 낮술을 마시기로 했다. 칼국수와 파전을 시켜놓고 소주를 맛나게 들이켜고 있는데 저 멀리 구석에서 우리를 빤히 바라보는 아이가 있었다. 그 눈빛이 귀여워서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고 다시 술잔을 기울이는데 그 아이가 우리를 계속 보고 있었다. "넌 누구니? 혹시 우리를 알아?" 사장님이 서비스 모음 전을 들고 오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오늘 학교에서 우주인을 봤다네요. 하하하."
이럴 수가. 우린 곧바로 술잔을 내려놓고 우주인처럼 손을 흔들었다. "지구인 친구야! 안녕!" 그러나 그 아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의 술잔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우주의 초등학생이 지구의 소주를 마신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나보다. 술잔을 들어 올릴 때마다 뭔가 부끄러웠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린 이만 우주로 가볼게. 안녕." 아이는 가게 밖까지 따라 나와서 우리가 차를 타고 떠날 때까지 계속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마음에 걸려서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 "미안, 우린 배우야. 앞으로 더 잘할게. 그리고 술은 줄일게."
그날 이후 우린 규칙을 만들었다. 어딘가에서 어린이극 공연을 하면 낮술은 반드시 그 지역을 벗어나서 마시자고. 그날 이후 계속 어린이극을 했지만 똑같은 개성의 아이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 어린이라는 존재는 정말로 각양각색으로 빛난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이를 연기할 수 없다.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어린이를 열심히 꺼낼 뿐이다. 우리 또한 각양각색 중의 하나였을 테니까. 기고자 : 오세혁 극작가·연출가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208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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