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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잔뜩 쌓인 진안의 한 시골집 앞마당. '불타는 청춘' 촬영에 처음 합류하던 날은 툇마루에 걸린 온도계가 터질 정도로 추운 한겨울이었다. '설경을 담으려고 촬영 이틀 전에 급히 장소를 바꿨는데 대성공'이라며 환하게 웃던 선배 PD가 진심, 악마처럼 보였다.

그/러/나. 두 겹으로 겹쳐 신은 스키 양말이 무색하게 꽁꽁 얼어 가던 발가락과는 달리 심장은 콩닥콩닥 열불 나게 뛰고 있었으니…. 어린 시절 VHS 테이프에 녹화를 해가며 열광하던, 강수지와 김완선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갑자기 국민학생(!)으로 돌아간 듯 모든 행동이 어색해지는 것을 애써 감추며 'PD답게' 인사를 나눴다.(사실은 그냥 어색했을지도 모른다.) 1박 2일이라는 시간 동안 카메라 뒤에서 언니들이 밥해먹고 수다 떨고 눈썰매 타는 걸 보고 있자니 한파주의보도 견딜 만했다. 잠시 미워 보였던 선배와도 사이좋게 깔깔거리며 군고구마를 나눠 먹었다. 춥고 힘들지만 이 즐거운 고생이 좋았다. 그때 또 깨달았다. 내가 예능 PD가 된 것은 대단한 소명 의식이나 거창한 목표(를 지어낼 수야 있겠지만) 때문이 아니라 그냥, '카메라 뒤'가 행복한 어떤 종류의 사람이기 때문이구나.

다양한 회사에서 많은 선후배들을 만나다 보니 발견한 예능 PD들의 공통점이 있다. 가만히 있기보다는 판을 벌이기 좋아하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멋지게 재능을 뽐낼 수 있게 만들 때 보람을 느끼는 '열혈 서포터'의 기질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카메라 앞에서도 멋진 셀럽 PD도 있지만, 나는 촬영을 하다 어쩔 수 없이 목소리를 내거나 리액션을 했을 때에도 기를 쓰고 편집으로 숨기는 편이다. 제작 발표회를 하거나 기자들과 통화를 할 때면 심장이 목젖에서 뛰는 것처럼 긴장한다. 카메라 뒤에서 꼼지락거리며 소품을 준비하거나, 작가들과 작당 모의(?)를 하고 스케치북을 들 때, 출연자들 힘내라고 큰 소리로 웃고 박수 치고 춤출 때 가장 편하고 '나답다'고 느낀다.

이런 부끄럼쟁이가 카메라 뒤에서 치열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릴 기회를 얻어 매우 감사한 경험을 했다. 그러나 역시 PD는 글보다는 프로그램으로 말해야 하는 법! 새해에는 대한민국이 더 많이 웃을 수 있도록 카메라 뒤를 더 열심히 지키려고 한다. 그동안 평범한 PD의 일기 같은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고자 : 황인영 TV조선 예능국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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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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