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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강물을

건너는 기쁨이여

손에는 샌들

夏河を越すうれしさよ手に草履

정수리가 타들어 갈 듯하다. 목이 바짝바짝 마른다. 서너 걸음만 걸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고 보송보송하던 살결은 어느새 갓 지은 인절미가 된다. 야속한 하늘은 이제 시작이라는 기세로 불볕을 퍼붓는다. 아, 여름! 드디어 왔구나. 그럴 때 눈앞에 실개천이라도 흐른다면 바짓단을 걷고 양손에 신발을 쥔 채 첨벙첨벙 들어가도 좋겠다.

시인 부손(蕪村·1716~1784)은 여름날 교토 인근 여행지에서 얕은 강물을 건너다 이 하이쿠를 썼다. 농가의 여식이었던 어머니의 고향을 들렀을 때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그리움에 발을 담그고 흐르는 추억을 발목으로 느꼈을까.

한 폭의 그림 같은 이 어여쁜 시를 나는 그저 즐길 수만은 없다. 부손이 손에 든 신발 때문이다. 에도 시대였으니 짚으로 만든 '조리(草履)'지만, 국어사전에 등재된 어휘를 찾을 수 없어 샌들로 번역했다. 한자로 풀 초(草)에 신발 리(履)를 써서 '조리'라고 부르는 이 신은 오래전부터 일본 사람들이 신던 여름 신발이다. 테두리 없이 엄지발가락 안쪽에 거는 끈으로 발을 고정한다. 영어로는 '플립플롭(flip-flop)'이라고 한다. 이걸 신고 걸을 때 나는 소리를 그대로 가져왔다. 세계 제2차 대전 때 일본 병사들이 신던 신발이 미국으로 건너가 만들어진 샌들이다. 우리는 흔히 일본어 '조리'를 변형시켜 '쪼리'라고 부르는데 아직 제대로 된 이름이 없다.

이런 순간 나는 큰 고민에 빠진다. 아무리 국어사전을 뒤져도 엄지발가락을 쏙 끼워 신는 이 신발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샌들'이나 '슬리퍼'가 외래어로 등재되어 있지만 이는 발등 전체에 둘러 신는 신발이다. 내가 여름이 올 때마다 매일 쓰는 물건에 이름이 없는 답답함이여. 혼자 끙끙 앓다가 광범위한 데이터를 가진 AI에 물어보기로 했다. '쪼리'를 대신할 표준어를 만들고 싶어. 그러자 챗 GPT가 멋진 생각이라며 네 가지 시안을 제시했다. ①발샌-발+샌들. ②가름신-발가락 사이를 가르는 신. ③끼움신-발가락 사이에 끼우는 신. ④날신-날 듯이 가볍게 신는 신.

흠…. 이도 저도 시원치 않네. 그냥 직관적으로 '엄지신'이라고 부르는 건 어떨까? 엄지발가락의 존재가 도드라지는 신이니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눈에 띄는 사물에 없던 이름을 붙이는 일도 계절을 맞이하는 기쁨이다. 여름 강물을 건너는 기쁨이여 손엔 엄지신. 이렇게 마음 편히 부를 수 있다면! 올여름엔 다 같이 좋은 이름을 찾아보자. 기고자 : 정수윤 작가·번역가
장르 : 연재
본문자수 : 94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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