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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표적 지한파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퇴임

"지난달에 65번째 생일을 맞으며 돌이켜 보니 인생의 절반에 해당하는 시간을 한국과 관련된 일에 몰두하며 보냈더군요. 한국에 100번 간 뒤로는 몇 번째 방문인지 세는 것도 그만뒀지요."

미국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65) 아시아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이 지난 30일 퇴임했다. 미국 조야의 대표적 지한파(知韓派)인 클링너는 2007년부터 헤리티지재단에서 한반도 정세를 연구하며 북핵 위기, 미·북 정상회담, 최근의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정국에 이르는 현안을 방송 등을 통해 미국에 알려 온 인물이다.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단순히 한국을 분석하는 걸 넘어서 한국인들이 분단으로 느낀 고통, 한국이 직면한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함께 느끼는 '내면화'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면서 "언젠가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통일된 한국을 거닐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퇴임 후엔 맨스필드재단에 비상근 연구원(펠로)으로 합류해 한반도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다.

클링너는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1990년대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한반도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CIA에서 여러 차례 지부장을 거친 1993년에 한국 지부를 맡으라는 임무를 받았다"면서 "조직 사기도 낮고 제대로 싸울 준비가 돼 있지 않은데,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벌이기 전에 문제를 고쳐 달라고 하더라"고 했다. 그는 "한국 지부를 맡기 전에 가족과 함께 태권도를 비롯한 한국 무술을 배웠다"면서 "나는 태권도 3단에 합기도와 특공 무술 1단, 아내와 두 아들은 태권도 2단, 딸도 태권도 1단"이라고 했다.

클링너는 "당시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지만 다행히 숙련된 분석관이 있어서 한국이 '동북아에 있는 토끼 모양의 작은 땅'이라는 것부터 하나씩 배워 나갔다"고 말했다. 1996~2001년 CIA 한국 담당 부책임자를 거친 그는 미국을 찾는 한국 당국자들과도 가깝게 교류했다. 그는 "말단일 때 처음 만난 이들을 장차관이 된 뒤에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내 직업의 큰 기쁨이었다"면서 "한국 당국자들은 직함이 1~2년 단위로 바뀌기 때문에 한 사람의 명함이 여러 장인 경우도 많다"고 했다. "얼마 전에 조현동 주미 대사를 만났을 때 직함이 각각 다른 그분의 명함 7장을 보여줬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는지 보여주는 징표 같은 거죠. 우리 중 한 사람은 계속 승승장구한 반면 다른 사람은 여전히 같은 명함을 가지고 있다고 농담하면서 함께 웃었죠."

클링너는 "외교 안보 문제에서 나는 한국의 보수 쪽에 더 가까운 입장이었지만, 진보 정부 인사들과도 맥주 한잔 기울이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내 견해를 가다듬는 데 항상 열려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때 서울의 숨은 술집을 찾아다니는 게 소소한 취미였다고 한다. 그는 "한국 진보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북한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너무 많이 양보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면서 "상대가 칼을 내려놓지도 않았는데 방패를 거두지 말라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한반도 전문가의 입지가 줄어드는 데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구조 조정 여파로 윌슨센터, 평화연구소(USIP) 등의 한반도 분석가들이 자리를 잃었고, 북한 문제를 공론화하던 미국의소리(VOA), 자유아시아방송(RFA) 등도 서비스가 중단됐다는 것이다. 그는 "헤리티지재단만 해도 내가 떠난 뒤에 한반도 안보 문제를 연구할 사람이 없다"면서 "워싱턴 DC의 젊고 유능한 전문가들이 중국에만 몰리지 않고 한국에도 계속 주목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기고자 :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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