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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출산 직전까지 만삭의 몸으로 집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진화심리학자 마티 헤이즐턴이 '호르몬 찬가'에서 설명했듯, 아이를 청결한 환경에서 맞이하려는 진화적 안배다. 그러다 불결함에 대한 경계가 나에게까지 옮아왔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때 좀 밀고 오란 것이다. 아내의 등쌀과 아이에 대한 미안함에 현관은 나섰는데, 막상 걸어갈 만한 거리엔 대중목욕탕이 없었다. 투덜거리며 간신히 찾은 목욕탕에서 세신을 받으며 생각해 보니, 그럴 법도 했다. 나부터 대중목욕탕에서 세신받은 게 적어도 2년은 됐다.

대중목욕탕의 근대적 기원은 로마 제국의 대욕장 테르마이(Thermae)로 볼 수 있다. 수도교를 통해 먼 거리에서 깨끗한 물을 끌어올 수 있게 되자, 도시 곳곳의 대욕장은 자연스레 하나의 작은 사회가 됐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단순 위생 시설조차 다수 시민이 모여들다 보니, 정치적 선전과 사교, 사업과 학문을 논하는 장소로 역할이 확장됐다. 선거철에 지역구 목욕탕을 하루 네 곳씩 돌아다니느라 손발이 퉁퉁 불었다던 어느 국회의원의 회고처럼, 고대 로마에서도 목욕탕은 그런 공간이었다.

그렇지만 목욕탕은 어쨌거나 위생 시설이다. 청결 유지는 개인 욕장에서 훨씬 더 달성하기 쉽고, 맨살을 보이며 애써 사회적 관계를 맺는 부담도 없다. 최근엔 나 홀로 이용할 수 있는 1인 세신숍도 등장했다. 굳이 불편한 다중이용시설을 감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회식 후 단체로 노래방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코인 노래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대형 영화관에 모이던 관객은 방구석에서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본다. '혼밥'이 더 이상 반사회적 행동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재택근무가 도입된 이후 사무직도 공용 사무실에 모여 근무하는 문화가 옅어지고 있다. 플랫폼 노동이 대세가 된 육체노동 시장 역시 특정 회사에 묶이지 않는 분산된 노동 행태를 보인다.

언젠가는 노동을 넘어 중고등학교나 대학 같은 교육 기관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이런 경향이 계속되면 결국 '공동체'라는 감각 자체가 묵은 때처럼 벗겨지는 것 아닐까. 오래된 공동체의 껍질이 벗겨진 자리에 무엇이 돋아날지 궁금하다. 기고자 : 박한슬 약사·'숫자 한국' 저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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