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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천 떼로 나타나 골머리

"동네 어디를 가든 벌레가 얼굴에 계속 달라붙어요. 이대로는 못 살겠습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직장인 박모(26)씨는 최근 이사를 결심했다. 자취하는 오피스텔 방충망에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가 떼 지어 붙어 있어 더운 여름철에도 창문을 못 열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들어왔는지 벌레들이 집안 곳곳에서도 날아다니는 탓에 잠도 제대로 못 잔다. 박씨는 "새벽에도 벌레들이 계속해서 집에 들어온다고 생각해보라.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

여름철의 불청객 러브버그가 올해도 수도권 주거 지역과 등산로 등을 휩쓸고 있다. 러브버그는 장마철을 앞둔 6~7월, 기온이 오르고 습도가 높아지는 시기에 대량 출몰한다. 올해는 예년보다 일찍 확산되면서 시민들과 상인들이 잇따라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시민들 일부는 "차라리 살충제로 박멸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러브버그가 인체에 무해하고 진드기 같은 해충을 잡아먹는 익충(益蟲)인 만큼, 지자체들과 방역 당국이 대응 방법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마라톤을 즐기던 서울 마포구 직장인 최민석(28)씨는 지난달 헬스장 회원권을 끊었다. 그는 퇴근 후 '한강 러닝'을 하며 경치를 즐기는 것이 낙이었다. 그러나 최근 달릴 때마다 러브버그가 출몰해 몸과 얼굴에 달라붙어 달리는 게 힘들어졌다. 최씨는 "가벼운 차림으로 운동하러 나왔다가 러브버그를 삼키면 달릴 마음이 싹 떨어진다"고 했다.

1일 오전 찾은 서울 은평구 대조시장 바닥은 러브버그 사체 수천 마리로 덮여 곳곳이 새까맸다. 45년째 방앗간을 운영하는 박균상(77)씨는 진열대 앞에서 파리채를 휘두르며 러브버그들을 쫓고 있었다. 박씨는 "며칠 전엔 벌레들이 콩고물 그릇에 들어가 모두 폐기해야 했다"며 "이 벌레들 나라에서 싹 없애줄 수 없느냐"고 했다. 어묵 가게 주인 이상철(50)씨도 "튀김 진열대에 유리막을 씌웠는데도 벌레가 틈을 발견하고 뛰어든다"며 "손님들이 불쾌해할까 늘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오후에 찾은 인근 은평구 제일시장에서도 상인들은 러브버그들과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었다.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조기준(68)씨는 진열대 위 과일로 달려드는 러브버그들을 쫓기 위해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미니 선풍기 두 대는 그가 아닌 과일로 향하고 있었다. 조씨는 "더워서 사실 내가 맞아야 할 바람인데 벌레를 쫓는 데 쓰고 있으니 헛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외래종인 러브버그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건 2015년이다. 인천에서 처음 알이 발견된 이후 2022년부터 급격히 개체 수가 늘었다. 중국 북부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산둥, 남부 등지의 러브버그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한국에서 발견된 러브버그와 유사했다. 암수가 붙어 다니면서 번식하는 습성 때문에 '러브버그'라는 별칭이 붙었다.

러브버그 유충은 땅속에서 유기물을 분해하며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익충'이다. 이 때문에 지자체의 병해충 방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게다가 러브버그 성충은 몸에서 산성 물질을 분비해 개구리나 두꺼비 등도 잡아먹지 않는 만큼 천적도 없다. 마포구 등은 살충제 대신 '살수(물 뿌리기)'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날개가 약한 러브버그는 물 뿌리기만으로도 쉽게 제거된다.

러브버그는 그간 은평·서대문·마포구 등 서울 서북부 지역에서 주로 목격됐다. 그러나 최근엔 서울 전역에서 목격되고 있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러브버그 관련 민원은 매년 크게 늘고 있다. 2022년 4418건이던 신고 건수는 2023년 5600건으로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9296건에 달했다.

최근 인천 계양산 일대에서는 벌레 사체가 등산로에 10cm 이상 쌓였다는 사진과 영상들이 잇따라 온라인에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특정 지역에 러브버그가 몰리는 원인은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브버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밝은 색 옷을 피하고 어두운 색 옷을 입을 것을 권한다. 러브버그가 밝은 색을 꽃으로 착각해 달려들기 때문이다. 서울 금천구에 사는 직장인 백승호(27)씨는 '러브버그로부터 내 몸을 지키겠다'며 어두운 색상의 '전투용 옷'을 여러 벌 구매했다. 백씨는 "다양한 스타일도 포기하고, 더위도 감수해야지 별수 있겠느냐"고 했다.

또 야외 활동 시 피부 노출을 최소화하고, 창문이나 출입구 방충망의 틈새를 꼼꼼히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시민들이 만든 비공식 '러브버그 확산 지도'도 등장했다. 출몰 빈도에 따라 지역을 '심각'(빨간색)·'주의'(노란색)·'청정'(파란색)으로 나눴다. 은평·강서·양천·구로구 등 서울 서부 지역과 김포·고양·인천·광명시 등이 '심각' 지역으로 표시돼 있다.

☞러브버그

중앙아메리카와 미국 남동부 해안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약 1㎝ 크기 파리과 곤충. 공식 명칭은 붉은등우단털파리(학명 플리시아 니악티카)다. 짝짓기하는 동안에는 물론 날아다닐 때도 암수가 쌍으로 다녀 ‘러브버그’로 불린다. 기고자 : 김도균 기자 강지은 기자 고유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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