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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곳곳 '접대용 가게' 급증

중국 수도 베이징의 주택가 골목 곳곳에 간판 없는 '가라오케 식당'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지난달 중국 당국이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금주령으로 고위 공직자들의 음주와 사적 모임을 전면 통제하자 기업 측에서 주택을 비밀 접대 공간으로 개조해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번 금주령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2년 집권 첫해에 선포한 '8항 규정'보다 한층 강화됐다. '중국판 김영란법'에 해당하는 8항 규정이 마오타이주를 비롯한 고급 주류와 호화 접대를 금지했다면, 이번 금주령은 공무 관련 식사 자리에서 처음으로 음주 자체를 금지해 공직자의 사적 교류를 틀어막았다.

최근 만난 베이징 재계 소식통은 "한 달 새 베이징 도심 일대에 주택을 개조한 식당이 급증했다"면서 "고급 인테리어 업체 한 곳에서만 10여 건을 수주했으니 실제 문을 연 식당은 100곳이 넘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보여준 사진과 영상 속 비밀 식당엔 방음 시설을 갖춘 가라오케, 마오타이 술병이 채워진 대형 진열장이 구비돼 있었다. 음향 설비와 주방 도구를 설치하는 데만 6만위안(약 1100만원) 넘게 든다고 한다. 모임이 열릴 때마다 유명 셰프가 와서 요리한다.

이런 비밀 식당은 고위 공직자와 기업의 은밀한 이해가 맞물린 산물이다. 지난달 18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국무원(행정부)이 개정 발표한 '당정 기관의 절약 실천·낭비 반대 조례'는 공무원이 업무 관련 식사 자리에서 고급 음식을 먹거나 담배·술을 즐길 수 없다고 규정하고 사적 모임도 제한했다.

그러나 기업인들은 공직자 접대를 중단할 수 없다. 무허가 증축을 묵인받은 호텔 소유주, 인허가에 목매는 건설사 대표, 당국 단속에 대비해 장기적으로 '관시(關係·인맥으로 얽힌 관계)'를 구축해 온 중소기업인 등에게 접대는 생존과 직결된 일이기 때문이다. 공직자들 또한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 출입이 봉쇄된 상황에서 마음 놓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사적 공간이 절실하다. 홍콩 싱타오일보는 "일부 지방정부가 공무원들의 3인 이상 회식을 원천 금지하고, 매일 음주 측정을 실시하자 내부 불만이 커졌다"고 했다.

시진핑 정권이 금주령을 꺼내 든 배경엔 집권 3기 중·후반부에 접어든 시점에서 정치 파벌과 반(反)정부 여론 형성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하반기 개최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공산당 20기 4차 전체 회의(4중전회)에서 시 주석 후계의 윤곽이 일부 드러날 수 있어 지도부 내 긴장감이 극에 달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반중 성향 중화권 매체는 "베이징에서 정치 원로와 군부 세력이 비밀 네트워크를 조성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 금주령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직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카드 게임 '관단'도 작년 하반기부터 사실상 금지됐다. 베이징의 금융권 관계자는 "관료와 기업인들은 최근 3년 동안 관단을 통해 인맥을 형성해 왔는데 정부가 갑자기 이를 금지했다"고 했다. 1960년대 장쑤성에서 탄생한 관단은 사교·접대에 중요한 오락이란 뜻에서 '종이 골프'로도 불린다. 식사 전후 각각 2~3시간씩 게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위 공직자들의 출국도 올해 들어 대폭 제한됐다. 지방정부 인사들의 해외 출장을 지원하는 단체의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에 중국 지방정부 고위 관료들의 해외 출장 허가가 느닷없이 취소되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중국 정치권에서는 중요 국면마다 '공직자 사교 제한령'이 반복돼 왔다. 시진핑 주석은 2012년 12월 공산당 일인자인 총서기에 오른 다음 날 8항 규정을 통과시켰다. 2017년 1월에는 '골프 금지령'으로 골프장 111곳이 돌연 폐쇄됐다. 시진핑이 2기 집권을 앞두고 반부패 운동에 박차를 가하며 정적을 제거하던 시기로 평가된다. 올해는 미·중 갈등과 내수 침체 등으로 내부 결속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다만 내수 진작에 치명적인 금주령을 오래 유지하긴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최근 한 달 사이 베이징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에서는 단체 예약이 줄줄이 취소됐고, 매출 급감으로 인한 임시 휴업도 속출했다. 베이징의 한 컨설턴트는 "요식업계에선 매년 전국 식당 폐업률이 80%(공식 통계는 2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접대까지 막히면 도산하는 곳이 급증할 것"이라고 했다. 베이징의 재계 관계자는 "중국에는 '상유정책, 하유대책(위에서 정책을 세우면 아래에서는 대책을 세워 맞선다)'이란 말이 있다"면서 "당분간 베이징에선 비밀 식당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고자 : 이벌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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