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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례 회의 끝에 모든 안건 부결

전국 각급 법원 대표 모임인 '전국법관대표회의'가 30일 회의를 열어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뒤 벌어진 대법원장 탄핵 등 정치권의 '사법부 공격'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법관대표회의는 이날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법조계에선 "민주당이 밀어붙인 초유의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특검·청문회 등에 대해 판사들은 침묵을 선택했고, 스스로 사법권 독립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날 온라인 화상으로 진행한 법관대표회의에는 전국 법관 대표 126명 중 90명이 참석했다. 사법부 독립 침해 등과 관련한 안건 5가지가 상정돼 찬반 투표에 부쳤으나 모두 부결됐다. 법관대표회의 측은 "치열하게 논의했지만 법관 대표들 간에 의견이 갈려 어느 안건도 의결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법관대표회의는 지난 5월 1일 대법원이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에게 유죄 취지 판결을 선고한 뒤 논란이 일자 그달 26일 한 차례 회의를 열었으나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이날로 회의를 미뤘었다.

이날 회의에서 '법관에 대한 특검·탄핵 등 사법권 독립 침해에 대한 우려' '개별 재판의 과도한 책임 추궁은 재판 독립 침해 우려' 등을 표명하는 안건에 대해서는 회의 참가자 90명 중 67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한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법관 대표들이 정치권의 '사법부 흔들기'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결과"라고 했다. 일부 진보 성향 판사들이 "대법원 판결이 사법 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며 낸 안건도 56명이 반대했다.

30일 온라인으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시작부터 논란이 됐다. 이번 회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5월 1일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 대통령의 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운동권 출신 등 정치색이 강한 판사들이 "법관대표회의를 열어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해 소집됐다. 대법원의 이 대통령 유죄 판결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은 "대법원이 대선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며 사법부를 향한 총공세에 나섰는데, 일부 법관 대표가 이를 회의 안건으로 올린 것이다. 법관대표회의는 사법 행정이나 법관 독립과 관련한 사항을 투표로 결정해 법원행정처 등에 건의할 수 있다.

◇"李 재판을 안건으로 올린 것부터 문제"

특정 재판의 잘잘못을 따지겠다는 목적으로 법관대표회의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적지 않은 법관 대표가 회의 개최에 부정적이라 회의가 무산될 뻔했다. 법관 대표들은 지난 5월 8일 회의 개최 여부를 결정하려고 투표를 했으나 정족수(26명)를 채우지 못했고 하루 연장한 끝에 정족수를 채웠다. 당시 회의 개최에 반대한 법관만 7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 안건도 처음엔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 사건의 이례적 진행이 사법 신뢰를 흔들었다'는 등의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일부 법관 대표가 "민주당의 대법원장·법관 탄핵 시도 등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해야 한다"고 주장해 사법권 독립과 관련한 안건이 추가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26일 열린 첫 회의는 2시간 만에 끝났다. 법관대표회의 내부에서 "대선(6월 3일)을 앞두고 법원 차원의 의견을 표명하는 게 정치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회의는 대선 후로 연기됐고 이날 다시 열렸다.

그런데 이날 회의에서도 상정한 안건 5가지가 모두 부결됐다. 상정된 안건은 이 대통령의 선거법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건, 민주당의 사법부 공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건 등 두 갈래였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장을 포함한) 법관에 대한 특검, 탄핵, 청문 절차 등은 사법권 독립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개별 재판을 이유로 한 각종 책임 추궁과 제도 변경이 재판 독립을 침해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한다' 등 사법부 독립과 관련한 안건을 채택하는 데 회의 참가자 90명 가운데 64~67명이 반대했다. '대법원 판결이 사법 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을 엄중히 인식하며, 정치적 중립성과 재판의 공정성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안건 채택과 관련해서도 찬성 29명, 반대 56명으로 부결됐다. 현직 고법 판사는 "이 대통령이 당선되고 관련 재판도 무기한 연기된 상황에서 법관 대표들이 정치권을 상대로 분명한 태도를 밝히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상회의서 격론… 결론은 "신중해야"

온라인으로 2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화상회의에서는 법관 대표들 간 격론이 오갔다고 한다. 법관 대표들은 각 법원에서 모은 판사들 의견을 소개하며, 어떤 안건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지 적극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법관대표회의에서 정치적 견해나 특정 재판에 대한 입장을 내는 것은 신중해야 하고,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고 한다.

법원 내부에선 "법관대표회의가 여당과 각을 세우거나 정치적 사안에 휘말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해 모든 안건을 부결한 것 같다"는 평가가 나왔다. 회의에 참석한 한 법관 대표는 "애초에 회의를 여는 데 반대한 법관 대표가 많았던 만큼, 특정 안건이 통과되긴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했다. 한 부장판사는 "안건 내용을 보면 사법부 압박이나 독립 침해에 대한 구체적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재판의 공정성 준수를 위해 노력한다' '사법권 독립 침해를 우려한다' 등 정치적 선언에 가까웠다"며 "법관 대표가 굳이 공식 의견을 내 정치권을 자극하거나 논란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사법부 독립과 사법 행정에 대해 일선 판사들의 의견을 모으는 회의체다. 전국 법원 65곳 대표 126명이 활동 중이며, 법원행정처에 자료 제출, 현안 설명 등을 요구할 수 있다. 기고자 : 방극렬 기자 김은경 기자 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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