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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세입자로 살고 있다. 못 하나 쉽게 박지 못하는 생경한 제약에도 아내는 늘 마뜩잖아 했는데, 결국 거실 등을 달다가 설움이 폭발했다. 등갓은 묘하게 천장과 수평이 맞지 않았다. 열어보니, 고정쇠 역할을 할 너트(nut) 2개가 비어 있었다. 너트를 체결해 비뚜름한 천장 조명을 바로잡는 건, 가장으로서 면모와 함께 남성성을 과시할 모처럼의 기회. 당장 너트를 사오겠단 호언장담을 하고 집을 나섰다.

동네에는 무인 철물점을 포함해, 철물점이 네 곳 있다. 분명 어릴 때 기억으론 동네 철물점에 볼트와 너트가 매대에 그득 담겨 있었는데, 요즘 철물점엔 말끔하게 포장된 공구밖에 없었다. 대형 마트나 다이소 같은 만물상도 사정은 비슷했다. 심지어 어느 철물점 주인은 "요즘 동네에서 그런 거 살 곳 없다"고 했다. 해외여행 기념품으로나 먹던 건망고도 편의점에서 쉽게 구하는 시대에 너트 구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주변에서 가장 근육량(?)이 많은 이에게 물은 끝에, 결국 인터넷 쇼핑으로 너트를 배송받았다. 나는 너트 두 개가 필요했을 뿐인데, 평생 써도 될 너트를 넉넉히 갖춘 '진짜 사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게 과연 우리나라에서 나만 겪고 있는 불편일까.

미국 학계에선 신선식품을 구매할 수 없는 지역을 음식 사막(food desert)이라 부른다. 식재료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취약지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너트 같은 간단한 부품을 구할 수 없는 우리 동네는 부품 사막(parts desert)일 테다.

당일 배송 여건이 갖춰진 덕에 중국산 싸구려 완제품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도리어 부품으로 들어갈 너트는 구하기 어려운 기묘한 환경이다. 필요한 만큼만 사고, 고장 난 걸 고쳐 쓰긴 구조적으로 어렵다. 온라인 유통이 오프라인 유통 기반을 구조적으로 잠식해 온 끝에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이렇다. 어쩌면 공실로 방치된 지역 상가들도 원래는 그런 부품을 팔던 곳이었을지 모른다. 필요한 물건은 쉽게 살 수 있지만, 정작 '조금만' 사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사회. 정말 이게 더 편리하고 유용한 방향으로의 변화일까? 기고자 : 박한슬 약사·'숫자한국' 저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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