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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출범했다. KDI가 올해 성장 전망을 1.6%에서 0.8%로 낮추고 잠재성장률이 0%가 되는 해가 2040년으로 10년 앞당겨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은 상황에서. 새 정부는 대규모 추경을 전제하고 있지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이 추경으로 해결될 정도라면 뭐가 걱정이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당선 직후 경기 활성화 방안 중심의 경제 운용 방안을 보고하러 갔다가 지금보다 임기 말에 경제가 최고조에 달하게 해 달라는 주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일시적 경기 부양보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것으로 들렸다. 성공한 정부가 되려면 소비성 공약 이행은 최대한 미루고 긴 호흡으로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 성장과 발전은 투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금 지구상에서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천문학적 규모의 기술 개발, 설비 투자를 일으키고 새로운 산업, 새로운 기업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 정도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이외의 대부분의 주력 산업에서 중국에 추월당하고 AI 등 신산업에서도 뒤지게 된 것은 투자 부진 때문이다.

투자에 가장 해로운 것은 금리 상승이다. 나랏빚 증가를 걱정하는 것은 무식의 소치라고 치자. 어떤 철칙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나랏빚의 증가가 금리와 물가 상승을 초래하고 그 부담이 가진 것 없고 빚이 많은 어려운 계층에 집중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최대한 막아야 한다. 미국도 일본도 나랏빚이 증가할 가능성만으로도 국채 가격의 하락, 금리 상승, 신용 등급 하락의 위협에 직면했다. 나랏빚은 절대 수준보다 늘어나는 속도가 더 문제다. 금리, 물가 상승을 초래할 속도로 나랏빚을 늘리면 시장의 복수에 직면하게 된다.

현금성 지원에 의한 소비 진작은 영세 자영업자의 연명을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재원은 한정되어 있고 소비 진작과 투자 활성화는 경합한다. 공짜는 없다. 소비 진작은 투자 부진을 대가로 치른다. 소비 진작이 투자로 이어진다는 전전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은 완전히 실패했고 일자리 정부는 일자리를 제일 못 만들고 끝났다. 그 돈으로 투자를 했어야 한다.

서민 생계비 부담을 덜어준다는 가격 규제는 투자에 필요한 목돈 만들기를 저해한다. 교육비, 보육료, 의료비, 교통비, 통신비, 전기 요금 등 역대 정부가 광범위하게 저지른 가격 규제는 해당 산업에의 투자 부진을 초래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이 전기 요금 억제다. 한전의 적자 누적으로 전력 확보를 위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산업용을 가정용보다 싸게 해 주는 것이 관례였는데 지난 정부가 가정용을 싸게, 산업용을 비싸게 하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 전기를 풍부하게, 값싸게 공급하지 못하면 AI, 반도체 등 전기 먹는 하마라는 첨단 산업에의 투자는 어렵게 된다. 당장 시정해야 한다.

전략적 투자자보다 소액주주를 더 위하는 자세도 문제다. '중국 제조 2025'를 목표로 국가가, 국영기업이, 비상장 기업이 수익성을 묻지 않고 과감한 투자를 지속해 온 것이 중국의 오늘이 있게 했다. 경영자에게 기업이 아니라 모든 주주에 대해 충실 의무를 지우는 개정 상법은 물론 배당, 자사주 취득을 많이 하라는 밸류업 정책은 투자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중국의 투자 우선 정책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국, 미국에 없는 규제가 투자를 막고 있는 사례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드론, 자율 주행 자동차, 빅 데이터 산업 등에서 우리가 완전히 중국에 뒤진 책임의 대부분은 규제에 있다. 공유 경제나 원격 의료 등 후진국에서도 보편화된 신산업들이 우리나라에서만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도 기득권자의 저항에 굴복한 정부의 규제 때문이다.

주 52시간 노동 규제처럼 업종을 가리지 않고 악영향을 미치는 규제도 많다. 알리바바의 마윈이 지적한 대로 중국의 테크 기업에서는 996(9시 출근, 9시 퇴근, 주 6일 72시간 노동)이 상식이고 CATL은 896을 적용하고 있다. 이런 나라, 이런 기업들과 경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 52시간 이상 일을 시키는 것은 금지하더라도 그 이상 일을 해야 하고,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경우에도 못하게 하는 경직적 규제를 그대로 둔다면 반도체뿐 아니라 모든 기술 집약 산업에서 투자를 포기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이기지 못할 경쟁에 뭐 하러 돈을 허비하겠는가?

모든 경제정책에서 중국을 따라 하자. 중국에 없는 규제는 다 없애자. 하루가 급하다. 이미 늦었다. 기고자 : 박병원 퇴계학연구원 이사장·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이사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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