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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공연에서 토니상 수상까지

"날짜도 정확히 기억해요. 2014년 9월 21일이었어요. 동빙고동 타코 가게에서 박천휴 작가를 만나 '어쩌면 해피엔딩'을 함께 하기로 했던 날."

K뮤지컬 최초 토니상 6관왕의 새 역사를 쓴 '어쩌면 해피엔딩'의 시상식 하루 전, 그 가능성을 처음 알아본 한국 공연의 '산파역' 김유철 피디(현 라이브러리 컴퍼니의 제작본부장)에게 전화했다. 그는 마치 이 작품이 세상에 첫발을 딛기 시작한 날을 가슴에 새겨 놓았던 것처럼 말했다.

당시 우란문화재단 제작 피디로 체계적인 공연 개발 사업을 기획하던 그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창작자가 윌 애런슨과 박천휴, '윌·휴 콤비'였다. 김 피디는 뮤지컬 '번지 점프를 하다'를 보고 노래의 가사가 너무 잘 들리는 데 반해 둘을 처음 만났다. "비영리 단체가 어떻게 공연 개발에 공헌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두 사람이 미국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전미 뮤지컬 공연 연대(NAMT)'가 있다는 걸 알려줬어요. 개발 지원 첫 작품 창작자로 두 사람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윌·휴가 구상 중이던 여러 작품 가운데 소극장 공연에도 알맞은 '어쩌면 해피엔딩'이 선택됐다. 박천휴 작가는 영국 밴드 '블러'의 보컬 데이먼 앨번의 솔로곡 '에브리데이 로봇'의'우리는 모두 핸드폰을 바라보며 집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는 로봇들…'이라는 가사에서 이야기를 구상했다. 한두 달 만에 보내온 트리트먼트(장면별 줄거리와 인물, 곡 구성 등이 포함된 뮤지컬 대본 작성 사전 단계)는 거의 완벽했다. 이듬해 낭독 공연과 시험 공연을 거쳐, 2016년 영어 버전의 미국 뉴욕 낭독 공연(7월)과 뉴욕 워크숍(10월) 지원까지 우란문화재단이 지원했다. 이때 뉴욕 낭독 공연을 본 브로드웨이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즈가 윌·휴 콤비에게 연락해온 것이 미국 버전 제작의 시작이었다. 토니상 8개를 받은 프로듀서인 그는 8일(현지 시각)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작품상 하나를 추가했다.

한국 공연은 5시즌을 거듭하는 동안 '회전문 관객'을 양산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한국 초연 당시 제작을 맡았던 제작사와의 인연은 미국 버전 투자 유치에도 결정적 도움이 됐다. 일본에서 두 시즌 공연도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동안 윌·휴 콤비는 코로나 팬데믹 위기 속에서도 투자를 유치하고, 지난해 10월 드디어 뉴욕 브로드웨이의 1100석 규모 벨라스코 극장에 미국 버전 프리뷰 공연을 올릴 수 있었다.

박천휴 작가는 "한국 공연 제작 시스템이 정말 빨리 발전한 덕에, 조금 더 분야별로 전문화, 세분화돼 있을 뿐인 브로드웨이 창작자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어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좋은 공연을 만든다는 목표를 공유하고 함께 가는 동안 많이 배웠고 또 고마웠죠. 특히 연출가 마이클 아덴은 정말 뛰어나고, 주연 배우 대런 크리스는 스타에 대한 선입견을 깨준 배우예요. 두 사람을 포함해 모두가 재능을 갖춘 사람이 열심까지 장착할 때 어떤 결과를 내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쾌감을 알게 해줬어요."

김유철 피디는 윌·휴 콤비가 미국 버전에서 한국 관객 정서와 통했던 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그것만은 기억해도 돼'를 과감히 빼고 미국 팬들에게 익숙한 올드 재즈 넘버를 늘린 걸 보며 "정말 똑똑하고 현명한 창작자들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어쩌면 해피엔딩'은 온라인 팬덤이 활발하지 않은 미국에선 드물게 자신들을 극중 등장하는 '반딧불이들(fireflies)'이라고 부르는 팬덤을 형성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 공연 후기를 나누고 영상을 만드는 2차 제작 활동에 참여한 사용자가 1900여 명에 달한다. 이런 팬덤도 브로드웨이 흥행을 이끈 주역 중 하나였다.

[그래픽] '어쩌면 해피엔딩'이 걸어온 길 기고자 :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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