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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오해해선 안 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아니다. 반 고흐 동생의 아내, 우리로 치면 '제수씨'에 해당하는 요 반 고흐 봉어르(Jo van Gogh-Bonger·1862~1925)가 주인공이다. 반 고흐의 동생이자 미술상이었던 '테오 반 고흐'는 이제 꽤 알려졌다. 형제가 주고받은 서간집 '반 고흐, 영혼의 편지'(위즈덤하우스) 등이 국내에 번역 소개돼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의 수석 연구원인 저자는 '형제의 편지를 잘 보관하고 정리해 책으로 낸 사람은 누구인가'로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생전 자신의 그림을 한 점밖에 팔지 못했던 비운의 천재 화가가 책까지 냈을 리는 만무하다. 형의 그림을 너무도 사랑한 테오라면 그럴 의지가 충분하지만, 그는 형의 죽음에 괴로워하다 반 고흐 사망 후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다. 책 내는 일을 "신성한 의무"로 여기고, "마지막 순간까지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어" 독일어와 영어 등으로 출간을 진두지휘한 인물은 테오의 아내 '요'다. 저자는 반 고흐를 전 세계적인 '빛의 화가'로 만들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늘에 가리었던 테오의 아내 '요'에게 그 빛을 끌어와 비춘다. "반 고흐의 위대함이 전 세계에서 인정받기까지 요가 한 중요한 역할에 과대평가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빈센트 반 고흐-편지'의 공동 편집자이기도 한 저자가 요의 일기와 그가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 회계장부, 사진, 목격자들의 다양한 기록까지 무려 10년간 방대한 자료를 뒤져 요의 삶을 다층적으로 재구성한 잘 쓴 평전이다. 이 과정에서 반 고흐의 그림이 어떻게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고 네덜란드에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만들어지게 됐는지, 무명 예술가가 명성을 얻기까지의 여정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요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정식 이름은 '요하나(Johanna)'지만 가족들은 요라 불렀다. 영국 유학 후 교사이자 번역가로 일했다. 20대 중반 테오를 만나 1889년 4월 18일 결혼한다. 당시 반 고흐는 이미 발작을 일으켜 자신의 귀를 상당 부분 자르고 프랑스 아를의 병원에 입원한 상태. 테오를 통해 이 상황을 들은 요는 "너무나 지독하게 가슴이 아프다"면서도 서로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이 형제의 관계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결혼 후 가진 첫아이의 이름을 '빈센트'라 지은 것도 이런 연유였을 터.
그러나 결국 반 고흐는 3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형의 부재를 떨쳐내지 못한 테오마저도 사망한다. 결혼한 지 이제 겨우 2년 된 요의 곁엔 어린 아들 빈센트와 테오가 소장하고 있던 900여 점의 반 고흐 회화, 형제가 주고받은 편지 수백 통만이 남게 된다. 당시 파리의 유능한 미술상이었던 테오는 10년간 자신의 수익 15%를 형에게 보내는 등 경제적 지원을 했고, 형은 자신의 작품을 동생이 소유하는 데 동의했다. 지금이야 반 고흐 작품의 가격이 수백억 원에 달하지만(반 고흐가 그린 '가셰 박사의 초상'은 1990년 약 900억원에 낙찰됐다), 당시 반 고흐에 대한 미술계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이는 요가 남편 사망 후 생계를 위해 하숙집을 운영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의 요를 설명하려면 적어도 다섯 개의 수식어가 필요할 듯하다. 하숙집 주인, 전시 기획자, 작품 판매자, 출판인, 빈센트 엄마까지. 요는 네덜란드 작은 마을 뷔쉼에 하숙집을 차리고, 그 다락에 반 고흐의 그림들을 보관한다. 이 작품들을 직접 관리하면서 네덜란드·독일·파리·런던 등 유럽 곳곳에서 열리는 반 고흐 전시회를 기획하거나 작품을 대여했고, 틈틈이 빈센트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를 정리해 주석을 더하고 서문을 썼다. 영어판 발간을 위해선 직접 번역에까지 나섰다. 이 과정에서 요는 자신의 목표를 혼자 힘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도와줄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반 고흐 예술 유산의 홍보와 전파라는 명예로운 과업을 감당하기로 한 것"이다. 책엔 "반 고흐 작품에 대한 미술계의 긍정적인 반응에 용기를 얻은 요가 영업 사원처럼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는 표현도 나온다.
저자는 이런 요의 숭고한 헌신 뒤엔 반 고흐의 예술성에 대한 확신뿐 아니라 남편 테오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고 본다. "요가 작품을 꾸준히 판매했단 사실은 형의 재능을 확신했던 남편이 옳았다는 증명이기도 했다. 그렇게 요는 테오가 형에게 헌신했던 시간을 명예롭게 만든 것이다."
그 탄탄한 연구만큼이나 분량이 길고 다소 딱딱한 게 사실이지만, 오늘날 반 고흐의 명성을 만들어낸 핵심 인물인 요 반 고흐 봉어르를 알아간다는 기쁨이 있는 책이다. '요 반 고흐 봉어르, 빛의 화가를 만든 여성'이란 부제가, 실은 제목인 셈이다. 기고자 : 남정미 기자
본문자수 : 178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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