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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머스크 갈등 고조

세계 최강 권력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관계가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지난해 대선 당시 요란한 '브로맨스(남자들끼리의 끈끈한 우정)'를 과시하며 밀착했던 두 사람은 5일 내내 "미쳤다" "배은망덕하다"고 막말을 주고받으며 전면전에 돌입했다. 이날 트럼프와 머스크의 충돌은 테슬라 주가 폭락으로도 이어졌다. 뉴욕타임스는 "두 사람의 동맹이 붕괴했다"고 전했다.

이날의 '포문'은 백악관에서 트럼프가 먼저 열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일론과 나는 좋은 관계였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모르겠다. 매우 실망했다"고 작심 비판했다. 머스크가 자신이 추진하는 예산안인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이 지나친 감세와 과도한 지출로 재정 적자를 악화시킨다며 반복해서 비난하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는 "그는 이 법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비난하려면 몇 달 전에 했어야 한다.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의무화 폐지를 추진하자 갑자기 불만을 품기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법안은 지난달 하원을 통과했고 상원 표결을 앞두고 있다.

머스크는 바로 자신이 소유한 소셜미디어 X를 통해 반격했다. "거짓이다. 난 이 법안을 본 적이 없다. 의원들도 제대로 읽지 못할 정도로 한밤중에 통과됐다"고 정면 반박했다. 이어 "전기차·태양광 보조금 삭감은 받아들이지만, 군살 예산과 특혜만 가득한 이 법안은 역겹고 혐오스럽다"고 비판했다.

충돌의 도화선이 된 OBBBA는 트럼프와 공화당이 주도하는 대규모 감세 패키지를 담고 있다. 개인·법인세율 인하, 미성년 자녀 공제 확대, 팁 및 초과근무 수당 비과세 등으로 세금을 줄이는 한편 국경 통제 예산 증액 등 트럼프의 각종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한 지출은 늘리는 방안이 포함됐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지난 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트럼프가 OBBBA를 지금 그대로 시행할 경우 "10년에 걸쳐 국가 부채가 약 2조4200억달러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법안이 나라를 망가뜨린다고 공격하는 머스크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이날 트럼프를 비난하는 X 게시물을 쏟아냈다. "내가 없었으면 트럼프는 선거에서 지고,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고 공화당도 상원에서 51(민주당) 대 49(공화당)가 됐을 것"이라고 이날 X를 통해 비난했다. "아주 배은망덕하다(Such ingratitude)"고도 했다.

이를 본 트럼프도 참지 않았다. 기자회견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일론은 그냥 미쳐버렸다. 우리 예산에서 수십억 달러를 아끼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의 (회사에 대한) 정부 보조금과 계약을 끊는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우주 기업 '스페이스X' 등 머스크 소유 사업체와 맺은 정부 계약을 끊겠다고 시사한 것이다.

공방은 이어졌다. 머스크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 때가 온 것인가?"라며 중도층을 대변하는 신당 창당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보수 성향 정치 평론가가 쓴 "트럼프는 탄핵돼야 한다"는 게시물을 퍼 나르며 "동의한다(YES)"고 의견을 달았다. 이어 "큰 폭탄을 투하할 때가 왔다. 트럼프 이름이 '엡스타인 파일'에 있다. 이것이 파일이 공개되지 않는 진짜 이유"라는 폭로성 글까지 올렸다. '엡스타인 파일'이란 미성년자 성범죄로 기소됐다가 사망한 제프리 엡스타인과 연루된 인물을 조사한 사건 파일로, 머스크는 이 사건에 트럼프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머스크는 이와 함께 트럼프와 엡스타인이 1992년 한 파티에서 함께 즐기는 옛 영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한때 트럼프의 '1호 친구(first buddy)'이자 최측근으로 여겨져 정권의 '실세'로 평가받던 머스크가 트럼프와 정면충돌하자 테슬라 주가는 5일 14% 폭락했다. 트럼프가 머스크의 기업에 득이 될 보조금 정책 등을 보복 차원에서 없앨 경우 기업 실적이 타격을 입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번진 영향이다. 머스크가 경영하는 우주 기업인 스페이스X의 정부 계약 파기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 언론들은 "각각 강한 정치 기반과 거금을 가진 두 사람의 '정략결혼'이 결국 깨졌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대선 당시 트럼프와 공화당에 수억 달러를 기부하며 최대 후원자로 떠올랐던 머스크와 트럼프의 관계가 깨지면서, 공화당 내 정치적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머스크는 최근 "이 감세 법안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에게는 향후 정치 자금을 끊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머스크는 이날 "트럼프의 대통령 임기는 3년 반 남았지만, 나는 앞으로 40년 넘게 활동할 것"이라며 자신의 '장기적 존재감'을 강조했다.

[그래픽] 트럼프 vs 머스크 감세 법안 관련 충돌 기고자 :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뉴욕=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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