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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O 오리지널 영화 '마운틴헤드'

누군가의 허세와 조롱, 시시껄렁한 농담을 두 시간 동안 듣는 일은 고역에 가깝지만, 그들이 억만장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HBO 오리지널 영화 '마운틴헤드'는 테크 재벌 네 명이 산속 고급 별장에 모여 휴가를 보내던 중, 세계적인 정치·경제 위기가 닥치며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HBO 드라마 '석세션'의 총괄 제작자 제시 암스트롱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미국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암스트롱은 이번에도 부유층을 겨냥해 냉소적이고 신랄한 유머를 펼친다. 국내에서는 4일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됐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오픈AI CEO 샘 올트먼, 메타 CEO 마크 저커버그,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자 피터 틸을 섞어 놓은 듯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세계 최고 부자 베니스(코리 마이클 스미스)가 소유한 소셜미디어는 누구나 쉽게 딥페이크(AI를 활용해 만든 가짜 콘텐츠)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신기능을 출시해 전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종교·민족·인종 갈등을 부추기는 가짜 영상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곳곳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진다.

친구이자 경쟁자인 네 사람의 이해관계가 정교하게 얽혀 있다. 딥페이크를 판별하는 기술을 가진 AI 회사 CEO 제프(라미 유세프)는 가짜 뉴스가 판치면서 주가가 폭등해 반사 이익을 본다. 이들의 '멘토' 역할을 해온 원로 투자자 랜들(스티브 커렐)은 암 진단을 받고 AI 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의식을 온라인에 업로드하고 싶어 한다. 넷 중 가장 가난한 억만장자라 무시당하는 수프(제이슨 슈워츠먼)는 투자 유치를 목적으로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미디어 재벌가의 상속 전쟁을 그린 '석세션'처럼 현실적이기보다는, 극단적인 과장으로 현실을 비꼬는 풍자극이다. 소셜미디어가 증오와 분열을 부추기는 동안, 주인공들은 안락한 성채에 틀어박혀 세계 곳곳의 참사를 쇼츠 영상처럼 소비한다. 테크계 리더들의 윤리적 무책임에 대한 비판이다. 이들은 바깥에 "우리 같은 인간이 80억명이나 있다"는 것조차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무신경하다.

OTT 시대의 달라진 제작 환경을 반영하듯, 기획부터 각본·촬영·후반 작업까지 단 6개월 만에 완성됐다. 완성도 면에선 아쉬움이 남지만, 암스트롱 특유의 촌철살인 대사는 빛을 발한다. 한 명이 우즈베키스탄의 폭력 사태를 걱정하자, 다른 한 명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미안한데 G20 국가에 신경 쓸 여력밖에 없어."

시끌벅적했던 휴가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가는 차 안, 스티브 커렐이 보여주는 공허한 눈빛은 긴 여운을 남긴다. 과연 이런 인물들에게 세상을 맡겨도 되는 걸까. 시의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씁쓸하고 날카로운 블랙코미디다. 기고자 :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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