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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스터디그룹·약한 영웅
'일진 잡는 모범생' 서사 뜬다

"공부를 한다. 이게 내 일이다."

코피가 후두둑 떨어진 시험지 위에서 문제를 푼다. 좀 전까지만 해도 폭력을 휘두르는 '일진'에게 뺨을 맞고 책상이 뒤집어졌다. 형의 유품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워크맨'을 빼앗겼다. "돌려줘"라고 외쳤지만 돌아온 건 주먹 한 방.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더는 참지 않았다. 맞서 싸웠고, 되찾았다. 워크맨을 틀고 헤드폰을 쓴 채 자리에 앉아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친구들은 웅성거린다. "쟤, 공부만 하던 애 아니었어?"

카카오웹툰 'ONE'의 한 장면이다. 이은재 작가가 그린 이 작품은 전교 1등이자 조용하던 고등학생 김의겸이 '참교육의 주체'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린다. 최근 드라마로 제작된 이 작품은 지난달 30일 'ONE: 하이스쿨 히어로즈'라는 제목으로 웨이브에서 공개된 지 이틀 만에 신규 유료 가입 견인 콘텐츠 1위를 기록했다. 앞서 흥행한 웹툰 원작 드라마 '약한 영웅'에 이어 '일진 잡는 모범생' 서사의 계보를 이을지 주목받고 있다.

일진 잡는 모범생 서사는 최근 더 두드러지고 있다. 과거에도 얌전한 모범생이 폭력배 일진을 응징하는 이야기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세는 아니었다. 네이버웹툰 '쎈놈'이나 카카오웹툰 '통'처럼 인기 액션 학원물의 주인공은 서열 1위를 노리는 전형적인 싸움꾼 스토리였다. 이제는 공부밖에 모르던 '조용한 아이'가 머리와 힘을 함께 쓰며 일진을 소탕하고 서열 구조를 뒤엎는다. 'ONE'의 주인공 김의겸은 엄격한 아버지의 억압 속에 살아가는 전교 1등. 그의 싸움 재능을 알아본 강윤기와 함께 '하이스쿨 히어로즈'를 결성하고, 복면을 쓴 채 일진 무리를 응징해 나간다. 2019~2020년 연재 당시 누적 조회 수는 6600만회에 달했고 '2020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받았다.

역시 드라마로 만들어진 '약한 영웅'은 이 흐름의 대표 격이다. 성적 상위 1%의 주인공 연시은은 계산된 전략과 주위의 물건을 무기로 이용해 일진들을 제압한다. 2022년 웨이브에서 방영돼 흥행했고, 올해 4월부터는 넷플릭스로 옮겨 시즌 2를 선보였다.

이 외에도 유사한 세계관은 빠르게 확장 중이다. 네이버웹툰 '스터디그룹'의 윤가민은 공부하러 들어간 스터디 모임에서 일진들의 방해에 맞서 싸운다. 올해 1월 티빙에서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네이버웹툰 '악의 등교'의 김현성은 교내 우등생이었지만, 학교 폭력으로 죽임을 당한 후 과거로 돌아가 복수를 시작한다. 카카오웹툰 'CELL'의 위상우는 금수저 출신 학생회장이었다가 모든 것을 잃고 초능력을 얻어 일진들을 응징한다. 이들은 모두 '평범하고 성실한 주인공이 숨어있던 무력으로 일진을 참교육한다'는 공통의 설정을 내세운다.

이러한 학원물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대리 만족을 통한 카타르시스"라고 입을 모은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진은 법 밖의 권력자로 군림한다. 독자들은 피해자에게 감정 이입하면서 평소 조용하던 아이가 폭력으로 응징에 나서는 순간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조용하고 착실한 외형 뒤에 숨겨둔 싸움 실력, 그것이 드러날 때 웹툰의 주요 소비층인 Z세대 독자들은 자신의 내면을 투영한다는 것. 전략과 힘을 갖춘 '능력 만렙' 캐릭터는 먼치킨(강력한 캐릭터)물에 익숙한 이들의 취향과도 맞아떨어진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과거 학원물의 주인공은 '일진'에게 맞서는 또 다른 싸움꾼이었다면, 요즘은 공부 잘하고 조용했던 학생이 정의의 주체로 등장하는 콘텐츠가 많아졌다"며 "평범하고 조용했던 이들이 불의를 응징하는 모습에서 현실에서 억눌렸던 감정을 해소하는 새로운 영웅 서사"라고 분석했다.

[그래픽] '일진 잡는 모범생' 웹툰 원작 드라마 기고자 : 김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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