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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과학기술원 박정기 센터장

"배를 지으라고요? 제가요?" 박정기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첨단인프라운영센터장은 13년 전인 2012년을 운명을 바꾼 해로 기억한다. 평생을 해양학자로 살아온 그다. KIOST 연구원으로 태평양을 누비며 해양 자원 개발 및 탐사를 해왔다. 그런데 난데없이 '배를 만들라'는 임무가 떨어진 것이다.

"저는 조선(造船) 공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데요!" 박 센터장의 말에 당시 KIOST 강정극 원장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박 연구원보다 연구선을 많이 타본 사람이 어딨어. 태평양은 수없이 다니고 남극도 다녀왔잖아. 연구선을 제대로 만들 사람은 당신뿐이야." 지난달 말 광화문에서 만난 박 센터장은 첫 해양 연구선 임무를 맡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13년 전 이 말도 안 되는 미션이 사고처럼 제게 왔다"고 했다.

우리나라 해양 연구선의 대부분은 이 남자 손을 거쳤다. 박 센터장은 지난달 20일 공식 취항한 우리나라 해양 연구선 이어도2호의 설계와 건조를 맡은 주인공이다. 2012년 국내 첫 글로벌급 연구선(5894t) 이사부호의 건조 사업 책임을 맡았고, 2022년 취항한 독도누리호(41t)의 건조도 박 센터장이 맡아 완료했다. 2018년부턴 이어도2호(740t)의 설계 및 건조를 시작, 7년 만에 배를 바다 위에 띄우는 데 성공했다.

해양 연구선은 일반 배와 다르다. 각종 첨단 장비를 싣고 다니는 '바다 위 연구실'이다. 해양학자들은 연구선에 올라 20~30일씩 망망대해 곳곳에서 해양 자원과 생물, 수온, 기상과 관련된 각종 연구를 진행하며 시시각각 표변하는 바다 상황을 가장 먼저 포착해낸다. 박 센터장은 "한 나라의 해양과학 연구와 산업 경쟁력이 해양 연구선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차세대 해양과학을 위해서라도 해양 연구선은 계속 필요했다"고 했다.

이어도호(357t)는 1992년 3월 취항한 이후 33년, 6894일 동안 68만㎞를 항해하고 작년 11월 퇴역했다. 낡은 이어도호 대신 바다 위를 달릴 이어도2호가 나와야만 했다. 예산과 시간은 한정됐고 갈 길은 급했다. 연구선이 수천t짜리 중대형 배가 아니다 보니 국내 소형 조선소와 일해야 했는데, 소형 조선소 대부분은 연구선을 짓는다는 설명에 "일손도 모자라고 수지도 안 맞아 못 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어렵사리 조선소를 섭외해 일을 시작하려 해도 계약이 중간에 엎어진 적도 있다. 박 센터장은 "연구선에 대형 첨단 장비를 넣기 위해 위원회 들어가 설명하고 심의받고, 일해줄 조선소를 찾는 데만 무척 오랜 시간이 들었다"고 했다.

건조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해양 연구선은 구조 자체가 일반 배와 달랐기 때문이다. 박 센터장은 "연구원들이 수십 일씩 배에 갇혀 먹고 자며 연구를 완수하려면 공간이 쾌적해야 한다. 방마다 화장실·샤워실을 넣어줘야 했고, 첨단 연구 장비를 모아두는 특수 선실도 필요했다"고 했다. 각종 관측과 채집을 위해 원격 무인 잠수정이나 수중 글라이더를 내보낼 때 이 장비들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음파로 추적하는 시스템도 필요했다. 박 센터장은 "'대충 이쯤에 있다'고 짐작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지 않은가. 이 수중 유인체 위치 측정 시스템만큼은 꼭 설치하고 싶었고, 시스템 설치를 승인받던 날엔 너무 기뻐서 눈물까지 났다"고 했다.

지난달 20일 이어도2호가 바다에 뜨던 날도 박 센터장은 "자식 시집 장가 보내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출산의 고통을 감히 안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그 비슷한 기분을 이날 느꼈던 것 같습니다(웃음)."

어린 시절부터 거대한 바다에 매료돼 심해 탐사에 매달려온 그다. 대학원 박사 학위(고려대 이학박사·지구물리학 전공)를 받던 날도 해양 광물 자원 망간각 탐사를 위해 서태평양 위에 있었다. 당시 함께 배에 올랐던 연구원들이 침대 시트로 학위복과 모자를 만들어 선상에서 학위 수여식을 해줬다고 한다. 박 센터장은 "바다는 제가 평생 떠날 수 없는 제2의 집 같은 곳"이라고 했다. "인류가 아직 다다르지 못한 마지막 미개척지가 바다예요. 이곳을 연구하고 탐구하기 위해서라면 앞으로 또한 많은 고생을 감수할 수 있을 겁니다." 기고자 : 송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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