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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지지 기반의 '농림족' 의원들, 싸게 비축미 푼 고이즈미 맹비난

'쌀 파동'을 겪는 일본의 집권 여당 자민당이 '비축미 정책'을 두고 내부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농민을 지지 기반으로 둔 '농림족(族) 의원'들과 개혁을 추진하는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상이 선을 넘는 비난전을 벌이는 것이다. 고이즈미가 내놓은 시중 쌀값의 절반인 '5kg당 2000엔(약 1만9200원)'짜리 비축미가 일본 정국을 흔들 뇌관으로 부상했다.

2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노무라 데쓰로 전 농림상은 최근 한 강연에서 "고이즈미는 아버지(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를 너무 닮아, 자기 혼자 판단하고 그냥 언론에 말한다"며 "(비축미 정책은) 당과 사전 조율이 없었다. (고이즈미는) 규칙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했다.

자민당은 내각 각료(장관)가 정책을 당내 관련 부회와 사전 조율하는 이른바 '네마와시(뿌리 정리 작업)'라는 관행이 있다. 81세인 노무라 전 농림상은 참의원(상원) 4선이자 자민당 농림수산부회 회장으로 최고참 농림족이다.

그러자 고이즈미는 "당내 동의를 얻어야 했다면, 소비자들은 값싼 비축미를 (이렇게 빨리) 점포에서 사지 못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고이즈미는 지난달 신임 농림상으로 취임한 직후, 비축미를 수의계약으로 싸게 풀어 즉시 공급하고 있다. 그동안 입찰 방식으로 JA전농(일본 농협)에 넘겼던 비축미가 시장에 더디게 유통되자 파격적인 정책을 도입한 것이다.

고이즈미는 2일 농림족의 아성인 국회 농림수산위에 출석해 "지금까지 (쌀 수요·공급) 예측을 잘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작년 수확 철) 햅쌀이 나와도, 쌀값은 괜찮지 않았다"고 했다. 농업 정책을 주물러온 농림족 의원들의 실책이 현 쌀 파동의 원인이라고 대놓고 비판한 것이다.

예전 같으면 40대 젊은 의원인 고이즈미가 70~90명 정도로 추정되는 자민당 농림족 의원들과 조합원 약 1000만명을 둔 JA전농과 정면충돌해선 승산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고이즈미를 지지하는 여론이 우세하다. 특히 일본 온라인에서 자민당은 주로 비판·조롱 대상이었지만, 이번엔 다르다. 단적인 사례가 온라인 최고 인기 정치인이라는 국민민주당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의 '동물 사료' 발언 역풍이다. 다마키 대표는 "1년만 더 지나면 동물 사료가 되는 쌀"이라며 비축미를 조롱했다. 일본 정부는 5년 보관 기간이 지난 비축미를 동물 사료로 공급하는데, 그런데도 2000엔이면 싸다는 자민당과 고이즈미를 겨냥한 것이다. 온라인에선 "당신이 사료라고 한 쌀로, 아이들과 부모에게 밥을 지어주는 심정을 아느냐"와 같은 분노가 터져 나왔다. 다마키 대표는 "불쾌감을 준 발언에 깊이 반성한다"며 물러섰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도 고이즈미의 비축미 정책을 강력 지지하고 있다.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면 정권 붕괴 위기에 놓이는 이시바 총리는 고이즈미에게서 반전의 희망을 보고 있다. 2일 이시바 총리는 "안정적인 쌀 공급을 위해 총리가 의장을 맡고 관방장관·농림상 등이 참석하는 각료 회의를 설치하겠다"며 "(국가 안보는) 군사만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식량과 에너지를 봐야 한다"고 했다. 지지통신은 "몰락 직전의 '이시바'라는 성(城)에 고이즈미라는 무기가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자민당의 다른 농림족들은 정면충돌을 자제하고 있다. 비축미 정책 성공으로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는 반전 드라마 기대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농림족이자, 자민당의 '넘버 2'인 모리야마 히로시 간사장은 "농업은 나라의 근간이다. 식량과 국토를 지키는 일은 누구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고이즈미와 다른 농림족 의원들에게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농림족

농민을 주요 지지 기반으로 하는 일본 자민당 의원들을 일컫는 말. 농업 관련 이익 단체와 밀착하고 있어, 농가 소득에 불리한 정부의 '쌀값 인하' 정책을 내심 원하지 않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도 농림족으로 분류되지만,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내각 붕괴 위기에 놓이자, 쌀값 안정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기고자 : 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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