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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협상 하루 앞 러시아 공군기지 최소 4곳 초토화
작전명 '거미줄'… 드론 117대 숨겨 트럭으로 이동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 깊숙이 위치한 공군 기지 최소 네 곳을 상대로 대규모 무인기(드론) 기습 공격을 1일 감행했다. 러시아 영토 내에 미리 잠입해 있던 우크라이나 드론들이 여러 곳에서 동시 출격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이 발발한 후 이런 식의 대규모 드론 공격이 벌어진 것은 처음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사진>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완벽하게 준비된 훌륭한 작전이었다. 우크라이나가 드론 117대를 사용해 러시아 순항 미사일 탑재 가능 폭격기의 34%를 파괴했다"고 했다. 그는 또 "1년 6개월 9일 전부터 이 공격을 준비해 왔다. 이를 통해 러시아에 약 70억달러(약 9조7000억원) 규모의 피해를 입혔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이 공격으로 전략 폭격기를 포함한 러시아 폭격기 약 41대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이번 공격에 쓰인 드론들은 우크라이나 특수 요원들에 의해 러시아 내로 밀반입됐고, 화물 컨테이너 트럭으로 위장한 이동 수단에 실려 표적으로 삼은 공군 기지 인근으로 이동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 작전에 '거미줄(Spiderweb)'이란 이름을 붙였다. 워싱턴포스트는 "(일본이 항공모함으로 진주만을 초토화해) 항모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린 1941년 진주만 공습을 연상케 한다"고 평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작전 준비를 시작했다고 밝힌 '1년 6개월 9일 전'은 2023년 11월 말이다. 그해 여름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실패하면서 러시아군의 반격이 거세졌던 시기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는 이날 핀란드에 가까운 러시아 무르만스크의 올레냐 기지, 몽골 인근 이르쿠츠크의 벨라야 기지, 모스크바 인근 랴잔·이바노보 지역의 기지 두 곳 등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이 중 벨라야 기지는 전선에서 4300㎞ 이상 떨어진 시베리아 내륙 지역으로, 우크라이나가 공격한 러시아 본토 중 가장 깊숙한 위치다. 젤렌스키는 이날 "(러시아에서) 작전에 참여한 요원들은 모두 무사히 철수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방부도 이날 "무르만스크와 이르쿠츠크의 공군기지가 우크라이나의 공격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피해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공격이 "(지난 3년간 벌어져 온) 이 전쟁의 규칙을 바꿨다"고 평가했다. 이어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군 지휘관의 악몽이 될 수 있다. 중국이 미 공군기지에, 북한이 한국 공군기지에 비슷한 공격을 해온다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핵심 무기로 떠오른 드론이 지난 수십 년간 고착화된 재래식 전쟁의 패러다임을 빠르게 무너뜨리며 새로운 전장의 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날 우크라이나의 공격은 러시아와 휴·종전을 위한 2차 협상을 하루 앞둔 시점에 단행됐다.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이날 우크라이나의 공격은 양측의 무력 충돌이 새로운 단계로 올라섰음을 보여준다고 영국 매체들은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빠른 시일 내에 끝내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정작 러시아가 휴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습 수위를 계속 높이는 것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젤렌스키는 이에 대해 "미국이 러시아를 제대로 압박하지 않는다"며 지속적 불만을 제기해 왔다. 로이터는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번 작전과 관련해 미국 등 서방 국가와 사전 정보 공유를 하지 않았다"며 이번 드론 공격이 미국에 대한 일종의 '메시지'임을 시사했다. 지난 2월 트럼프가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거세게 몰아붙이며 "당신에겐 (협상) 카드가 없다"고 윽박지르던 장면도 재조명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들은 "결국 우크라이나에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음이 밝혀졌다" "우크라이나는 '당신은 카드가 없다'는 사람들(트럼프 진영)의 말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러시아도 공세 강화로 맞불을 놨다. 러시아군은 이날 드론 472대와 미사일 7기를 동원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중부 키로보흐라드, 북동부 하르키우 등지에서 민가 및 군 시설에 공격을 퍼부었다. 이 과정에서 드니프로주에 있는 한 군사훈련장이 미사일 직격탄을 맞아 병사 최소 12명이 숨지고 60여 명이 다쳤다. 러시아는 쿠르스크 인근 수미주와 동부 도네츠크 전선에서도 새로운 공세를 시작, 수미주 마을 6곳과, 도네츠크의 노보필 마을을 점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측의 교전 격화는 휴·종전 조건을 놓고 열리는 평화 협상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2일 열린 이스탄불 2차 협상에서 우크라이나는 최소 30일간의 무조건적 휴전, 전쟁 포로 교환, 강제 이송 아동 송환 등을 담은 제안 문서를 내놓은 상태다. 또 러시아가 2014년 이후 병합한 점령지(크림반도 포함)의 러시아 귀속을 인정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포기를 요구하고,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의 러시아 편입 인정을 계속 고집해 협상은 진전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트로이의 목마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한 전략적 기만 전술을 일컫는 표현. 적의 내부에 침투한 뒤 핵심 시설을 타격하는 전술을 폭넓게 의미한다. 그리스군이 남기고 간 거대한 목마를 트로이인들이 성 안에 들였고, 목마 속에 숨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몰래 성문을 열어 트로이를 함락시킨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기고자 :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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