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트럼프 관세에 대한 동맹국들의 '역습'이 시작됐다

지난 6일 미국 백악관에서 미국·캐나다 정상회담이 열렸다. 4월 28일 총선에서 승리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방문한 것이다. 회담장에 앉은 트럼프 대통령과 카니 총리를 보니 얼굴은 웃고 있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역력했다.

캐나다는 원래 미국의 최고 동맹국이다. 그러나 미국이 일방적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해 관계는 급전직하했다. 게다가 트럼프는 캐나다 총리를 '주지사'로 부르며 하대하거나,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두 통상적 국가 관계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외교적 결례다. 이에 질세라 카니 총리는 총선 전부터 여러 차례 "고도의 경제 통합에 기반한 미국·캐나다 간 오랜 관계는 이제 끝났다"거나 "미국 중심의 개방된 국제무역 체제도 끝났다"면서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아니다"라고까지 했다.

긴장감을 풀려고 한 것인지 트럼프는 "캐나다를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했고, 기자가 '51번째 주' 얘기를 꺼내자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It takes two to tango)"라며 슬쩍 질문을 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캐나다에 부과한 관세를 철회할 생각이 없냐고 묻자 단호히 "없다(No)"고 했다. 단호하기는 카니 총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담 후 열린 단독 기자회견에서 카니 총리는 미국이 부과한 관세를 철회시키겠다고 공언했다. '51번째 주' 문제에 대해서는 "양국이 서로 주권국가로서 국익을 위해 평등한 지위에서 협상을 하는 것이며, 자꾸 그런 얘기를 하면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분명히 얘기했다고 밝혔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캐나다 양국은 불만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언론 반응을 봐도 양국 무역 관계를 재규정할 긴 싸움이 시작된 만큼 협상 타결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중론 같다. 트럼프 관세에 대한 캐나다의 반격이 본격화된 것이다.

반격은 다른 동맹국들에서도 관찰된다. 미국·캐나다 정상회담이 있던 날, 독일에서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가 신임 총리로 선출되었다. 메르츠는 이미 지난 2월 총선 때부터 트럼프를 겨냥한 강성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미국은 이제 유럽을 신경 쓰지 않고 러시아와 연대하려 하니 유럽 스스로 방위력을 강화하여 미국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제 기능을 못 하니 NATO를 대체할 새로운 구조를 창출해야 한다고도 했다. 미국의 핵우산을 대체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독일이 새로운 핵 협력 방안을 협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과거 독일의 어떤 총리에게서도 들을 수 없었던 파격적 발언이다. "유럽이 안보 무임승차로 미국의 돈을 훔치고 있다(rip off)"는 트럼프의 주장에 대해 경제 규모가 유럽 최대인 독일 지도자가 강성 발언으로 화답한 것이다.

미국에 고분고분할 줄 알았던 일본 역시 꼬장꼬장한 모습을 보인다. 트럼프 정부 쪽에서 일본이 방위비를 GDP의 3%까지 올려야 한다는 발언이 나오자 이시바 총리가 국회에 나와 "일본의 방위비는 일본이 정하겠다"고 받아쳤다. 이달 초 워싱턴에서 열린 제2차 미·일 관세 협상에서 일본은 미국 측 협상안을 전면 거부했다. 자동차와 철강 등에 대한 품목 관세 역시 테이블에 올리지 않으면 협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시바 총리는 미·일 간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자동차 관세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협상 타결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가장 체계적으로 반격하는 나라로는 싱가포르가 있다. 싱가포르 신임 총리 로렌스 웡은 5월 3일 총선을 앞두고 이미 4월 초 방송에 나와 트럼프 관세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인지 설명했다. 단지 대미 수출이 좀 줄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전후 국제무역 질서가 아예 붕괴 위기라는 것이다. 트럼프가 국가별로 관세를 달리할 경우, 모든 국가에 동일한 무역 조건을 적용한다는 전후 세계무역의 기본 원칙이 무너질 것이며, 무역 의존도가 GDP의 300%가 넘는 초무역 국가 싱가포르는 최대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리셴룽 전 총리도 공개 강연에서 구체 대응 방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첫째, 일본과 협력하여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확대하자. 둘째, 캐나다·멕시코는 물론 트럼프에게 맞서 다자 무역 질서를 수호하고자 하는 모든 나라와 협력하자. 셋째, ASEAN과 교류·협력을 강화하자는 것인데, 쉽게 말하자면 '미국 없는 국제무역 질서'를 수립, 방어하기 위해 싱가포르가 리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다른 나라에선 요즘 최대 화두가 트럼프 외교와 그에 대응하는 일이다. 그런데 대선 국면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선 탄핵이니 단일화니 정치 공세, 정치 공학으로 날이 샌다. 각 대선 캠프 사람들은 자기가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지, 미국 인맥이 얼마나 좋은지 자랑하기 바쁘다. 세계 5대 무역 대국이라는 나라에서 국제무역 질서를 어떻게 지킬지는 관심이 없고 트럼프랑 무슨 '딜'을 하겠다는 얘기만 무성하다. 제발 부탁이니 대선 토론 시작되면 위기에 처한 국제무역 질서를 어떻게 지킬지, 정치인들이 관심 좀 가져주면 좋겠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자유무역 수호'야말로 가장 중요한 '민생 문제' 아닌가? 기고자 :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국제관계학 교수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947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