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남로당이 접수한 국군 제14연대, 대한민국에 총구를 겨눴다

1946년 7월 초, 모스크바를 비밀리에 방문한 김일성과 박헌영에게 스탈린은 공산당 이름을 버리고 '근로 인민의 대중 정당'을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그 지시에 따라 한 달 후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이 통합한 북조선로동당, 그해 11월 말 조선공산당,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 등 3당이 합당한 남조선로동당이 출범했다. 조선공산당은 입당 절차가 까다로워 3만여 명의 정예 당원으로 유지된 데 반해 '대중 정당'을 표방한 남로당은 '당원 5배가(倍加) 운동'을 전개해 20만명이 넘는 신규 당원을 모집했다.

남로당은 관공서, 국방경비대, 학교 등 주요 기관에 '당원 세포'를 조직적으로 침투시켰다. 1946년 1월 창설된 경비대는 사상 검증과 신원 조회 없이 자원입대자를 받아들였다. 그만큼 남로당 세포들이 침투하기 용이했다. 선발, 보임, 전출·입 등 인사권이 중앙으로 일원화돼 있었던 경비대 장교에 대한 공작은 중앙당에서 맡았다. 남로당은 핵심 당원을 사관학교에 입교시키기도 했지만, 남로당 세포 장교가 학연, 혈연, 지연 등 인간관계를 이용해 동료 장교들을 포섭하기도 했다.

도 단위로 모병이 이루어진 하사관과 병사에 대한 공작은 '남로당 도당'에서 맡았다. 경비대 병사들은 대부분 빈농 출신이었고, 복무하는 동안은 경찰의 검거망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좌익 활동을 하다가 경찰에 수배돼 경비대를 은신처 삼아 입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처럼 장교와 병사에 대한 공작은 중앙당, 도당으로 이원화돼 있었기에 장교와 병사는 같은 남로당원이더라도 서로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단선·단정 반대를 명분으로 남로당 제주도당 인민유격대가 일으킨 4·3 사건은 5·10 총선거 이후에도 진압되지 않았다. 6월 18일에는 진압군 제11연대장 박진경 대령이 남로당원인 예하 부대 중대장 문상길 중위에게 암살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부 수립 이후 경비대를 모태로 창설된 '국군'은 군내 좌익 세력을 축출하는 '숙군(肅軍)'에 들어가는 한편, 전남 여수 주둔 제14연대를 비롯한 3개 연대에서 차출한 3개 대대를 제주도로 추가 파병하려 했다.

1948년 5월 창설된 제14연대는 '붉은 연대'라 불릴 정도로 남로당원이 많았다. 20여 명의 장교 대다수가 중앙당 당원이었고, 병사 10명 중 1명이 전남도당 당원이었다. 모병 실무 책임자였던 김지회 중위는 평양학원 대남반에서 교육을 받고 남파된 남로당 중앙당 세포였다. 그는 "이승만과 박헌영 중 누구를 존경하느냐?" 물어서 박헌영을 존경한다고 답한 지원자만 병사로 선발했다. 그 때문에 제14연대 병사의 '반수 이상'이 좌익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해 10월 19일 밤, 제14연대 남로당 조직 책임자였던 인사계 지창수 상사와 남로당 핵심 세포 40여 명은 3발의 예광탄을 신호로 병기고와 탄약고를 점령했다. 영내에 남은 장교들이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렸지만, 반란군은 장교들을 보이는 대로 사살했다. 사살당한 장교 20명 중 15명은 남로당 중앙당 세포였다. 김지회 중위는 "나를 빨치산 본거지 지리산으로 데려가면 신분을 확인해 줄 사람이 있다"고 사정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후 반란군에 지휘관으로 합류했다.

비상 나팔을 울려 병사 2000여 명을 연병장에 집합시킨 지창수는 "동족상잔의 제주도 출동에 반대한다. 인민군이 남조선 해방을 위해 38선을 넘어 남진 중이다. 우리는 북상하는 인민 해방군으로서 행동한다"고 연설했다. 좌익이 아닌 병사들도, 일부는 지창수의 연설에 공감해서, 일부는 살아남기 위해서 반란군에 합류했다. 즉석에서 연대장에 취임한 지창수는 반란군을 지휘해 여수 시내 점령에 나섰다. 최신 무기로 무장한 2000여 반란군의 공격을 여수 경찰은 2시간도 버티지 못했다. 아침이 밝기 전 여수 전역이 반란군 손에 떨어졌다.

항구에서 출동을 준비하다가 반란을 보고받은 연대장 박승훈 중령은 순천 주둔 2개 중대를 지휘하는 선임 중대장 홍순석 중위에게 반란군 진압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남로당 세포였던 홍순석 중위는 연대장 명령에 항명하고 부하들을 이끌고 반란군에 합류했다. 당일 순천이 반란군에 점령되었고, 이후 광양, 보성, 구례, 곡성이 차례로 반란군 수중에 넘어갔다. 23일 순천, 27일 여수가 진압군에 수복될 때까지 일주일 남짓한 기간 전남 동부 지역은 집집마다 인공기가 게양되었고, 지역별로 인민위원회가 조직되었다. 곳곳에서 인민재판과 즉결 처분이 이어졌다.

20일 여수 중앙동 광장에서 개최된 인민 대회에는 시민 4만여 명이 참여했다. 시민 대다수는 자의든 타의든 반란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했다. 반란군과 좌익 학생들은 경찰관, 우익 인사 수백 명을 잔혹하게 학살했다. 순천경찰서장 양계원 총경은 경찰서 뒤뜰 느티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채 몽둥이로 구타당했고, 수갑을 찬 채 군용차에 매달려 비포장도로 위를 끌려다니다가 총살당했다. 여수 인민위원회는 대한민국 법령을 무효화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했다. 무상몰수·무상분배 토지 개혁을 실시하고 압수한 쌀, 담배, 지까다비(작업화) 등을 시민들에게 나눠 주었다. 노동자가 접수한 은행에서는 주민들에게 대출까지 해주었다.

그러나 반란군과 시민들의 일주일 남짓한 '공존'은 여수가 진압군에 수복된 이후 대재앙으로 돌변했다. 참혹한 동료의 주검을 목도한 진압군은 '호박잎 하나라도 반란군에게 준 자'는 모두 협력자로 분류해 단죄하려 들었다. 그런 기준이라면 경찰과 우익 인사 가족을 제외한 여수·순천 지역 시민 대부분이 협력자였다. 진압군은 시민들을 운동장에 모아 놓고, 반란에서 살아남은 경찰과 우익 인사들에게 시민들 사이를 훑고 다니면서 반란에 가담한 인물이 보이면 손가락으로 지목하게 했다. '손가락 총'에 맞은 사람은 곧바로 끌려 나와 개머리판이나 몽둥이로 구타당한 뒤 운동장 한편에 파놓은 구덩이 앞에서 사살돼 불살라졌다. '백두산 호랑이'라 불리던 진압군 대대장 김종원 대위는 군중들 앞에서 일본도로 협력자의 목을 잘라 처단하기도 했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가 1997년에서 2003년까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순 사건으로 1만여 명이 희생되었는데, 군경에 의한 학살이 9500여 명, 좌익에 의한 학살이 500여 명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을 향한 남로당의 공격이 없었다면, 좌익에 의해서건 군경에 의해서건 생기지 않았을 희생이었다. 여순 사건 이후 제14연대는 해산되었고, 국군 부대 단위별 명칭에 '4' 자를 넣지 않는 관행이 생겼다. 1949년 10월 남로당은 132개 좌익 정당·사회단체와 함께 등록이 취소돼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으로 퇴출당했다. 그러나 남로당 잔당들의 난동은 6·25전쟁 휴전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기고자 :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2511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