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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도 대학처럼 '입대 컨설팅' 받는다

아주 오래된 농담 혹은 진담. 군대 인사계가 부대원들을 불러놓고 묻는다. "피아노 전공한 사람 없나?" "네, 이병 홍길동!" "그래? 너 어느 대학인데?" "A대 음대 피아노 전공입니다." "에이, S대는 없어?" "네, 일병 김철수! 제가 S대 피아노 전공입니다." "그래? 좋아. 이리 와서 피아노 좀 옮겨라."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던 고운 손은 수백㎏ 피아노를 들어 올리는 데 효용이 있다.

며칠 뒤 인사계가 다시 부대원들을 불렀다. "미대 나온 사람 있나." "네, 이병 이영수! H대 디자인학부입니다." "오케이, 부대원들 족구하게 연병장에 줄 좀 그려라." 부대 상징을 디자인적 요소로 살리고 원근감을 실감 나게 반영해야 하나. 심각하게 검도 유단자를 찾길래 나섰더니 '대파'를 썰라고 했다던가. 국방의 의무 앞에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한편으론 그래서 어쩔 수 없는 비효율과 부조리가 상존하는 곳이 군대다.

'아버지 세대'는 아마 이 같은 불합리를 일정 부분 참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며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른바 강남 '대치맘'들은 자녀 군 입대도 컨설팅을 통해 미리 준비하고 골라가는 게 유행이다. 특기와 적성에 맞는 대학과 전공, 입시 전형을 '맞춤형'으로 준비해야 입시 전쟁에서 살아남는 것처럼. 멀뚱히 앉아 입영 통지서를 기다릴 게 아니라 군대도 미리미리 준비하고 '찾아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군대도 골라서 가자"

서울에 사는 주부 한모(40)씨는 미국 영주권이 있는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군대 컨설팅'을 받았다. 카투사로 군 복무를 했으면 하는데,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는 주변 조언을 따랐다. 아들은 영어·중국어 등을 조금씩 하고 코딩과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이 있다. "군 복무가 짧아졌다 해도 20대 한 토막을 나라에 바치는 셈인데, 조금이라도 건설적인 시간을 보냈으면 했어요."

컨설턴트는 카투사와 육군 영어어학병·정보보호병·소프트웨어개발병 등 예닐곱 개 보직을 추천했고, 대학 진학 때 정보 보안이나 소프트웨어 등 관련 전공을 택한다면 유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솔직히 골라 갈 수 있는 '모집병' 보직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멍 때리고 있다가 시간에 쫓기듯 군대에 가서 허송세월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죠." 병무청에 따르면 육군의 기술행정병 모집 분야만 147개에 달하고, 어학병의 경우도 영어·프랑스어·아랍어 등 8분야에서 선발한다.

수도권 대학 회계학과에 다니는 김모(20)씨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 형이 운전병으로 비교적 '편하게' 군 생활을 한 것을 보고 컨설팅을 의뢰했다. 운전병 배점은 운전면허증 종류, 고등학교 출결 점수, 가산점의 합산으로 만들어진다. 1종 보통 면허를 소지하고 있고, 고교 시절 결석은 없고, 헌혈을 한 번 한 기록에 따라 현재 스코어 98점. 김씨는 "1지망을 어디에 하느냐에 따라 커트라인 점수가 100~103점이라고 했다"며 "헌혈이나 봉사 활동 등 가산점을 더 받아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사실 '골라 가는 군대', 모집병은 원래 있던 제도다. 군대는 일종의 초대형 기업이다. 다양한 인재를 필요로 한다. 전문가를 뽑아야 빨리 가르쳐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법. 이를 위해 열린 포지션이 두루 있지만 '몰라서 못 간' 경우가 태반이다. 관련 업계의 한 컨설턴트는 "아버님들도 생소해한다. 대부분 '군대 그냥 가는 거지'라고 생각한다"며 "대학 입시처럼 군대 준비는 중고교 때부터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요즘은 징집병보다 모집병이 많다. 대학 입시에서 정시보다 수시 전형의 문이 넓어진 것처럼, 전략·전술이 분명 필요하다는 얘기.

의대생·유학생에게 인기… 공군 열풍도

서울 강남에 사는 한미주(가명)씨는 최근 의대에 재학 중인 22세 아들을 육군에 입대하도록 했다. 의료 대란으로 학업이 중단되면서 '국방의 의무'를 빨리 해치우기로 결정한 것이다. 군의관·공중보건의의 복무 기간은 37~38개월이지만 육군 현역병(18개월)은 절반도 안 되니 경제적이라고 판단했다. 한씨는 '입시 컨설턴트'에게 소개받은 '입대 컨설턴트'를 찾았다. "마침 아이가 1종 보통 운전면허도 있고, 고교 출결 점수도 만점이고, 국가유공자 가산점도 받을 수 있으니 운전병으로 지원해 보라고 했습니다. 영어 성적이 좋아 어학병도 가능하고요. 좀 안전하고 편한 곳에서 빨리 군 복무 마치고 나온다면 그게 여러모로 나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레지던트 수련을 마치고 군의관으로 복무하는 게 일종의 '특권'처럼 여겨졌다. 현역병보다 훨씬 편하고 유연한 환경이라는 인식 때문. 하지만 의료 대란 여파로 의사들도 현역병을 선택하는 게 최근 트렌드다. 한씨는 "아들 친구 중에도 컨설팅을 받거나 '동반 입대' 전략을 짜서 군대에 지원하는 의대생이 많다"고 전했다. 작년부터 올해 1학기까지 현역병 및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 이행을 시작한 의대생은 3000명을 넘긴 것으로 추산된다. 의료계는 공보의·군의관 복무 기간을 현역병 수준으로 단축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또 다른 컨설팅 수요는 재외국민이다. 유학생이 많아진 만큼 이들도 어학 능력이나 전공을 살려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컨설팅·면접 등을 의뢰한다. 군에서 영주권자만을 대상으로 1년에 네 차례 정도 실시하는 적응 프로그램을 거쳐 입대하고 있다. 한 입대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요즘 추세를 보면 유학생들도 카투사나 공군, 어학병 같은 모집병에 관심을 보인다"며 "최전방에 배치될 가능성이 있는 일반 징집병보다 부대 문화가 덜 험한 곳을 찾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다 보니 공군은 '3수 해서 간다'고 할 정도로 입대 열풍이다. 지난 3월 입영한 공군 병사 모집이 10.7대1 경쟁률을 기록했다. 공군이 10년 만에 최고 지원율을 달성한 것으로, 병역 자원은 갈수록 줄어드는 가운데 공군 지원 쏠림 현상이 뚜렷한 것이다.

공군은 복무 기간(21개월)이 육군(18개월), 해군(20개월)보다 길지만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민주적인 병영 문화 덕에 MZ들에게 인기라는 분석. 격오지 근무가 거의 없고 휴가·외박 기회는 많다. 병장 기준 월급이 205만원으로 인상돼 목돈을 모아 제대할 수 있다는 점도 인기 요인. 군 관계자는 "근무 여건이 상대적으로 낫다는 평판에 인적 자원도 상향 평준화돼 있다는 진단이 많다"고 했다. 군 컨설팅 업계 관계자는 "대치맘들은 공군 합격 노하우를 묻는 의뢰가 많다"고 했다.

콘텐츠 제작병, 드론 운용 및 정비병, 인공지능 연구병 등 최근 산업 트렌드와 맞아떨어지는 보직도 경쟁률이 높다. 군 복무가 진로와 연결되는 경력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론병의 경우 전공 학과에 재학 중이거나 초경량 비행 장치 조종사 자격증이 있는 경우, 관련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 등이 요구되는데 서류 심사 만점자도 많다고. 드론병 입대를 위해 자격증이나 대회 준비를 도와주는 사설 교육기관도 인기다.

병무청도 '경력 단절 없게 미래 설계'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군 입대에도 '사교육'과 '맞춤형 컨설팅'이 일종의 비즈니스로 자리 잡은 모양새. 직업 군인 출신들이 차린 입대 컨설팅 업체들이 정보 접근의 폐쇄성과 노하우를 무기로 활동 중이다. 한 업체는 컨설팅 비용으로 150만원짜리 상품을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팔고 있다. 아들 둘의 군 입대 컨설팅을 받은 김모(45)씨는 "여러 업체에 의뢰해 봤는데 실전 면접 준비와 상담 디테일, 입대 후 사후 관리에서 차이가 있었다"며 "아직 시장 자체가 큰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씨도 100만원대의 비용을 지출했다고.

병무청도 '병역 진로 설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군 특기와 연계한 직업선호도 검사를 거쳐 일대일 대면 상담 뒤 적합한 보직 등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입영 후에는 개인 경력 개발, 취업 지원까지 확장한다는 계획. 2019년 1615명을 시작으로 2023년 4만8000여 명, 지난해 6만4000여 명이 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매년 증가 추세다. 일부 대학은 교양 과목으로 병역 진로 설계에 참여하도록 해 적성·전공에 맞는 군 특기 분야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 군 관계자는 "스마트하고 알뜰한 군 복무라는 점에서 '보직 쇼핑'이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며 "MZ들에게 맞는 군 문화로 변화하는 현상 중 하나"라고 말했다.

'느닷없이 날아온 입영 통지서에 하늘이 무너진다. 연인과 친구,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파리한 머리로 훈련소로 들어서는 쓸쓸한 뒷모습.' 흔히들 생각하는 이런 '입대의 추억'은 이제 고전이 되고 있는 셈이다. 기고자 : 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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