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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조기 대선과 50만명의 아르바이트

누구는 환란이라 하고 누구는 내전이라 한다. 계엄부터 대통령 탄핵과 파면, 1위 후보에 대한 대법원 판결, 막판 단일화 변수 등 쏟아지는 뉴스를 따라가기 어렵다. 그렇게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선거가 다가온다.

이 난리통에도 어떤 국민은 그날 하루를 보람차게 보낼 방법을 찾아낸다. 바로 선거를 지원하는 반짝 아르바이트. 날이면 날마다 오지 않는 역사 현장을 '1열 직관(맨 앞에서 직접 관람)'하는 재미에, 최고 20만원 넘는 짭짤한 수입까지 챙길 수 있다고 한다.

이번 대선엔 투·개표 업무에 공무원과 일반인 50만여 명이 일시 인력으로 투입된다. 그중 '최고의 꿀알바'라는 개표 참관인 신청 열기는 아파트 청약 뺨친다. 롤러코스터 나라 국민의 조기 대선 100배 즐기기.

단 하루 꿀알바, 50만명 몰린다

"5월 5일 오전 9시 땡 하면 달립니다. 지역별로 선착순 5배수만 신청받아 추첨한대요. 단기·야간 알바 중 가성비 최고예요."

배달 라이더와 대리기사 등 일용직 근로자들이 모인 커뮤니티와 단톡방에서 지난달 말부터 '개표 참관인 일거리를 놓치지 말라'며 퍼뜨린 정보다. 취업 준비생과 대학생, 주부, 아파트 경로당에도 소문이 돌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5~9일 홈페이지에서 18세 이상 선거권자를 대상으로 6·3 대선 개표 참관인 지원 신청을 받았다. 어린이날인 첫날 대부분 지역에서 몇 분 만에 신청이 마감됐다. 서울·수도권과 부산 등 대도시가 특히 뜨거웠다고.

서울 영등포구의 주부 김모씨는 "작년 서울시 교육감 보선 개표 참관인을 해봤는데 진짜 꿀알바여서 이번 조기 대선에 또 신청했다"며 "예상치 못한 선거가 자주 열리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솔직히 일거리가 생겨 좋다"고 했다.

공무원들도 술렁였다. 한 법원 직원은 "투·개표 사무원 자원자를 모집한다는 내부 공지가 뜨자마자 2분 만에 마감됐다"고 전했다. 모 초등학교 교직원은 "나도 해보고 싶었는데 학교 측이 '직원이 선거에 차출되면 학교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며 신청자가 없다고 해버렸다"고 했다.

선거 때마다 투표와 개표 업무를 진행할 사무원, 그 과정이 공정하게 치러지는지 지켜보는 참관인 등 단 하루짜리 대규모 인력 시장이 선다. 선관위 상근 직원은 2000명이 채 안 된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기관별로 공무원을 차출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일반 국민에게서 일손을 확보한다.

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대선엔 50만명 안팎의 임시 인력이 채용된다. 투·개표 사무원 필요 인력만 32만6000명. 지난해 총선 때 수(手)개표를 도입해 개표 사무원은 20% 증원된 7만7000여 명이다. 절반 정도는 지방직 공무원, 나머지는 공기업·은행 직원과 각 정당·공공단체가 추천한 일반인이 채운다.

투·개표 참관인은 정당·후보자 수에 연동해 정한다. 후보가 10명 이상 난립한 역대 대선에 비춰 이번에도 참관인이 16만~18만명 투입될 전망이다.

'난도 下' 단순 업무, 수당은 짭짤

이번에 지원자가 몰리는 건 조기 대선에 국민적 관심이 쏠린 데다, 급여도 지난 총선부터 크게 인상됐기 때문이다. 사무원 수당은 6만원에서 9만원으로 50% 올랐고, 참관인 수당은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100% 인상됐다. 식대도 끼니당 7000원에서 9000원으로 상승. 새벽에 귀가하는 개표 인력에겐 여비를 따로 주기도 한다.

이에 따라 투·개표 사무원은 8~14시간 일하고 사례금(12만원)까지 총 17만~23만원을 받는다. 하루이틀 대체 휴가도 생긴다. 공무원 노조는 "저임금 노동 착취"라며 선거 업무를 거부하지만, 많은 공무원은 "선거도 구경하고 가욋돈에 대휴까지 생긴다"며 좋아한다. 일반 국민인 투·개표 참관인은 통상 20만원 안팎을 받는다.

일당은 현장에서 현금으로 주거나 다음 날쯤 통장에 입금한다고 한다. 세금도 떼지 않는다. 여기에 예산이 총 800억원 안팎 들 전망이다. 이번 대선에 책정된 국내 관리비는 약 3228억원인데, 이 중 4분의 1이 일시 인건비로 나가는 셈이다.

선거 알바 해본 이들은 "일의 난도는 하(下)였다"고 전한다. 선관위 직원들이 모든 준비를 해놓고 일시 인력에겐 단순 반복 업무만 맡기기 때문.

투표 참관인의 경험담은 선거의 성격이나 투표율에 따라 다르다. "종일 앉아 사람들 쳐다보느라 지루했지만 버는 돈 생각하니 참을 만했다"(2022년 지방선거)는가 하면 "사람들이 끝없이 밀려와 전쟁터 같았다. 밥도 못 먹고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2024년 총선 격전지)였다는 이도 있다. 대민 봉사 정신과 인내심은 필수다.

큰 선거에서 개표는 자정을 넘기기 일쑤. "막말로 몸빵(몸으로 때우는 일)" "시간·졸음과의 싸움"이라는 경험담이 많다. 지난해 총선에서 개표 사무원을 했다는 경기도 화성 주부 이모씨는 "손가락 골무 끼고 끝없이 투표지를 분류하고 숫자 세는, 단순 노동이 반복되는 공장 같았다"고 했다. 부산의 취준생 이모씨는 "개표는 빠르지만 각 지역 투표함이 도착할 때까지 30분 이상씩 기다리는 시간이 많다. 모두 말없이 휴대폰 보며 졸음을 참는데, 새벽 1~2시쯤 마의 고비가 온다"고 했다.

선거 알바의 꽃은 '개표 참관인'으로 알려졌다. 전국 250여 개표소에서 오후 8시쯤부터 뒷짐 지고 개표 과정을 지켜보는 일로, 노동 강도 대비 급여가 가장 높다. "투표소에선 종일 힘들게 대민 안내를 해야 하지만, 개표소는 공직자들과 조용히 일해 편하다"고 한다. 수당도 밤 12시만 넘기면 이틀 근무한 셈이라 20만원 이상 받는다. 자정 이후엔 아무 때나 귀가해도 된다고. 작년 총선 때 서울 한 지역은 개표 참관인 선발 경쟁률이 12대1을 기록하기도 했다.

"역사의 현장, 맨 앞줄서 직관"

사람들이 선거 알바에 뛰어드는 건 돈 때문만은 아니다. "흔치 않은 역사적 순간에 참여한다는 감동"과 "짧은 시간이지만 민주주의 최전선에서 뛰어봤다는 성취감" "개표 현장의 영화·콘서트 같은 몰입감"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 때문에 선거 알바를 일부러 꼬박꼬박 신청한다는 '경력자', 특별 이벤트처럼 가족·연인끼리 오는 이도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투표 참관인을 해봤다는 서울 송파구의 20대 배우 지망생 정모씨는 "투표장에 보행기 끌고 오시는 노인 등 여러 사람을 관찰하며 값진 경험을 했다"며 "세상과 뉴스를 보는 눈이 달라지더라"고 말했다.

인천의 회사원 박모씨도 "집에서 개표 방송 보느니 현장에 나가 '1열 관람'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아무나 해볼 수 없는 경험 아니냐"고 했다. 투표율 77%에 0.73%포인트 차 박빙 대결이 펼쳐진 2022년 대선에선 당선 윤곽이 새벽 4시쯤 나왔고 아침 6~7시까지 개표가 이어졌다. 올해도 잠 못 이루는 밤이 될지 모른다.

이번 대선에 투·개표 참관인 신청이 몰린 데는 일각서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도 작용했다. 실제 지난 4월 서울 구로구청장 보선 개표장에선 참관인 3명이 "중국이 개표 시스템을 해킹하는 것 아니냐" "투표함 봉인지를 떼었다 붙인 것 같다"며 소란을 피우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됐다.

지난 총선에서 개표 참관인으로 일한 대전의 대학생 이모씨는 "개표대에 바짝 붙어 참견하거나 현장을 생중계하려다 제지당하는 분들이 있었다"며 "직접 보면 모든 업무가 분업화되고 수백 명이 지켜보고 있어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 것"이라고 했다.

개표 사무원으로 수차례 일했다는 30대 공공기관 직원 황모씨. "투표용지 앞뒤로 도장을 찍거나 볼펜으로 낙서해 정성스럽게 무효표로 만드는 유권자가 생각보다 많다. 민주당만 빼고 모든 정당을 몽땅 찍은 용지, 국민의힘 빼고 다 찍은 용지, 후보별로 칸칸이 접어 주름치마처럼 만든 투표지도 기억에 남는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투표를 아예 안 하기보다는 그렇게라도 의사를 표시하는 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래픽] 6·3 대선 인력 수요 / 인력 수당 및 사례금 기고자 : 정시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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