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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만 잘해줘도 감정 조절하는 힘 커져요

최근 중학교 1학년 학생인 A양이 병원에 왔다. 자신이 살던 아파트 5층에서 뛰어내리며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로 이송됐는데,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소아청소년 정신과를 찾은 A양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따돌림당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당시 용기를 내서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네가 잘해야 한다"는 말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때부터 시작된 우울증은 중학교에 와서 따돌림이 없어지고 나서도 계속됐다. A양은 "이 세상에 내 편이 없고, 앞으로도 상황이 더 좋아질 희망이 없을 것 같다"며 자살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는 아이들이 해가 지날수록 많아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대 미만 우울증 환자는 5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어 2021년 6만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불안장애로 병원을 찾은 아이들도 같은 기간 1만9917명에서 3만5099명으로 크게 늘었다.

우울과 불안은 일종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런 정도를 넘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에 이른다면 일상에서 겪어야 할 필수적인 통과의례라고 보기 어렵다. 좀 더 적극적으로 조기에 인지하고 치료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아청소년들은 겉으로 우울과 불안감을 잘 내색하지 않거나, 경험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옆에서 보호자들이 주의 깊게 아이를 관찰하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치기 쉬운 이유다. 내 아이가 이렇게 힘든 감정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데도 보호자가 놓칠 수 있으니 평상시 아이와 의사소통을 충분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는 아이와 병원을 찾은 보호자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참을성'이다. '내용이 중요하지 형식이 뭐 그리 중요한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정신건강과 관련해서는 형식이 특히 중요할 때가 많다. 아이와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평상시 보호자가 아이의 말을 주의 깊게 들으려고 얼마나 꾸준히 노력했는지가 중요하다.

아이와 의사소통에 임하는 보호자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한 번의 질문으로 보호자가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을 가져올 수 있다.

A양 부모는 딸이 자살을 시도한 이후 비로소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병원에 계속 데려왔다. 다만 병원을 계속 찾더라도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지는 않는다. A양은 약물치료까지 병행했지만, 이후에도 자해를 반복했다. 6개월 정도 지나면서 자신의 우울감에 대해 어느 정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됐다. 또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해 행동에 더는 의존하지 않게 됐다.

이때 중요한 것이 매일 자녀에 대해 긍정적인 관심을 갖고 공감적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많은 경우 공감적인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우울이나 불안 같은 부정적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충분한 도움이 된다.

반드시 아이에게 조언을 해줘야 한다는 강박 관념도 내려놓는 것이 좋다. 사실 아이들이 우울과 불안과 관련한 이야기를 보호자에게 터놓을 때는 조언을 구하기 이전에 자신이 힘들다는 것에 대해 이해와 공감을 받기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섣부르게 조언을 하기보다 참을성을 갖고 기다려 주면서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누가 봐도 아이가 너무나 뚜렷하게 우울해하고 불안해한다면 병원에 가거나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다. 겉으로 나타나는 것만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애매한 상황이 실제로는 고도의 전문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일 수 있다. 이럴 때에는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

[그래픽] 20대 미만 우울증·불안장애 환자 수 추이 기고자 : 이문수 고대구로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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