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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권 3개 시·도, 24억 들여 완성했지만 6개월째 출간 못해

호남권 3개 시·도가 편찬을 추진한 '전라도 천년사(史)'가 5년여 연구·집필 끝에 완성됐으나, '식민사관' 논란에 발목이 잡혀 6개월째 출간을 못한 채 진통을 겪고 있다.

8일 전북도에 따르면, '전라도 천년사'는 '전라도'라는 명칭이 처음 정해진(1018년·고려 현종 9년) 지 1000년을 맞은 지난 2018년 광주광역시와 전남·전북도가 24억원을 들여 편찬을 추진했다. 역사·문화·예술 분야 전문가 213명이 집필에 참여해 5년여 작업 끝에 총 34권(통사 29권, 자료집 4권, 총서 1권), 1만3559쪽 분량의 전라도 통사(通史)가 완성됐다.

편찬을 주관한 전북도는 당초 지난해 12월 21일 '전라도 천년사'를 전라도민에게 헌정하는 기념식(봉정식)을 갖기로 했다. 하지만, 봉정식 직전 시민 단체 '전라도 오천년사 바로잡기 전라도민연대'(이하 도민연대)가 "전라도 천년사가 전북 남원시를 '기문(己汶)'으로, 장수군을 '반파(伴跛)'로, 전남 해남군을 '침미다례(?彌多禮)'로 표현하는 등 '일본서기'에 기록된 지명을 사용했다"며 역사 왜곡 의혹을 제기했다.

일본서기는 8세기 초(720년)에 나온 일본 역사서로,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任那)일본부설의 근거로 활용됐다.

도민연대는 "일본 극우파와 강단 학자들이 날조한 용어가 버젓이 책(전라도 천년사)에 쓰인 데 대해 통탄을 금할 수 없다"며 "전라도 천년사가 왜곡되면 우리 역사 또한 왜곡될 것"이라고 했다. 시민 단체의 문제 제기에 전북도는 봉정식을 취소하고, '전라도 천년사' 전자책(e-book)을 공개해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것으로 한발 물러섰다. 그러자 시민단체 등에서 '전면 폐기'까지 거론하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에 '전라도 천년사' 편찬위원회(이하 편찬위)는 전자 책 사전 공개 없이 출간을 강행하겠다며 맞섰다. 광주, 전남·북 3개 시·도와 편찬위는 지난 4월 18일 회의를 열어 전자 책을 2주 동안 공개하고 이의 신청을 받겠다고 밝혔다.

이에 광주시의회와 호남지역 국회의원, 전남도의회, 전남 시장·군수협의회 등이 잇따라 성명 등을 통해 사전 공람 기간 연장과 내용 수정, 전면 폐기 등을 촉구했다. 결국, 편찬위는 지난달 10일 입장문을 내고 '전라도 천년사' 공람 기간을 7월 9일까지 2개월 연장한다고 밝혔다.

편찬위는 입장문에서 "(시민 단체가) 구체적 내용 확인 없이 단지 일본서기에 기록된 지명 등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식민사관으로 매도했다"며 "이런 식의 주장에 따른다면, 그동안 간행된 모든 국사 교과서와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책들도 식민사관 역사서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식민사관이라는 공격으로 국민 감정을 자극하기보다 학문적 주장과 토론을 통해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찬위원으로 참여한 이강래 전남대 명예교수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문맥을 임나일본부설을 긍정하거나 지지하는 서술로 읽는 기이한 현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공람 기간 중에도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동학 관련 단체와 전북 정읍 지역 시민 단체는 지난달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동학농민혁명 역사를 왜곡한 전라도 천년사를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고대사·고고학 분야 24개 연구 단체는 지난달 31일 입장문을 내 "'사이비 역사'를 강변하는 이들이 지역사 편찬사업을 식민사학이라고 선동하고 있다"며 "역사학계에 대한 악의적 매도를 중단하라"고 했다. 천득염 한국학호남진흥원장은 "시일이 걸리더라도 제3의 학술 단체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열어 충실한 토론을 통해 대안을 찾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북도는 공람 기간 중 접수된 의견을 분류해 주제별로 집필진과 시민 단체, 학술 기관 등이 참여하는 공개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이영일 전북도 학예연구관은 "현재까지 30여 명 70여 건의 의견이 접수됐다"며 "토론회를 통해 합리적인 결론이 나올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래픽] 전라도 천년사 편찬사업 개요 기고자 :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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